‘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하는, 모든 세대에게 도저히 잊힐 수 없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 ‘반달’이 노래로 불린 지 80년이 됐다. 민족 수난기에 동요·동시를 통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제창한 ‘반달 할아버지’ 윤극영(尹克榮·1903~88)의 전집(전2권)이 어린이날을 맞아 현대문학사에서 나왔다. 현대문학 5월호는 윤극영 특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윤극영의 둘째 며느리인 이향지(62) 시인이 엮은 이번 전집은 동시 142편과 동요 188곡을 비롯, 동화·소설·자유시·수필·회고록 등을 수록했다.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근대 창작동요의 기원을 마련한 그의 생애는 ‘동심’과 ‘민족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설날’ 중) 같은 동요는 민족 고유의 서정과 애환을 절창으로 노래한다.
윤극영이 처음 동요에 눈을 뜬 것은 도쿄 유학시절 처음 만난 소파 방정환(1899~1931)으로부터 촉발됐다. “우리는 밤이 이슥한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갑자기 소파는 ‘왜 우리가 일본 노래를 부르지?’ 하고 물어보았다. ‘우리 고유한 노래가 없잖아?’ … ‘문제는 어린이들이야. 윤극영, 어린이에게 줄 노래를 지어라. 그들은 10년, 20년이 흐르면 바로 우리나라를 지고 갈 역군이다.’ …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회고록 ‘나의 이력서’ 중)
윤극영은 1923년 방정환 마해송 등과 함께 도쿄에서 어린이문화운동의 시원이 되는 ‘색동회’를 창립하고, 그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듬해에는 동요보급단체 ‘다알리아회’를 조직, 일제에 의해 금지곡으로 취급된 우리말 동요 악보를 인쇄해 서울의 보통학교(현 초등학교) 조선인 교사들에게 몰래 보내기도 했다.
그는 문학과 음악을 넘나들었다. 윤석중 방정환 박목월(동시 필명은 박영종) 이원수 박팔양씨 등의 동시가 그의 손을 거쳐 노랫가락으로 태어났다. ‘기찻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기찻길옆’) ‘동동동동 동대문 동대문을 열어라…’(‘동대문놀이’) 등은 윤석중과 윤극영이 콤비를 이뤄 각각 글을 쓰고 곡을 붙인 동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