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5일 개봉)의 기자 시사회에서 홍상수 감독은 “주위에서 들은 것 다 잊어버리고, 그냥 영화 자체로만 봐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홍상수’라는 이름을 잊은 채 ‘홍상수 영화’를 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올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그의 이 신작은 홍상수 영화 중 가장 직설적이고 가장 쉬우며 가장 유머러스하다. 그러나 결국 이 작품의 특색은 이젠 한국에서 작가주의 영화를 만들 때 하나의 방법론이 되어버린, ‘홍상수적’이라는 말로 가장 잘 설명될 수밖에 없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영화감독 헌준(김태우)과 대학교수 문호(유지태)는 몇 년 만에 다시 만난다. 술잔을 기울이던 둘은 이전에 헌준의 애인이었고 이후 문호와도 사귀게 된 선화(성현아)를 떠올리곤 충동적으로 7년 만에 그녀를 찾아간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요소들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생활의 발견’까지 이전 홍상수 영화 속 장면들로 인수분해된다. 그러나 신작이 나오면 같은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우열을 가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평론가들의 직업적 관성 같은 것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면, 이 작품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홍상수 영화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작가주의란 기본적으로 특정 감독의 반복되는 성향에 주목하는 입장이 아닌가.

홍상수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방부제이다. 그의 영화 중 가장 섹스 코미디에 가까운 이 작품은 무엇보다 순수해야 할 것 같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조차 속물근성과 허위의식, 그리고 눈먼 욕망을 비린내 나는 체액으로 뒤섞은 채 펼쳐놓는다. ‘누가 누구와 어떻게 자는가’의 문제는 그의 영화에서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인간이란 동물의 작동 원리이며, 그 수컷과 암컷들이 이뤄놓은 세계의 밑그림이기도 하다.

드러난 내용과 감춰진 의도가 충돌하는 입체적 대사들의 재미는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몰래 유학을 떠나며 여자를 버리려 했던 남자는 공항에서 뜻하지 않게 여자를 만나자 “기다릴 수 있는 거지? 사랑해” 하고 달콤하게 속삭이고, 제멋대로 살다가 7년 후 갑작스레 그 남자와 마주친 여자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하고 비장하게 외친다. 좁은 실내에서 위선의 불꽃을 튀기는 이런 장면들은 홍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심리적 스펙터클’일 것이다. 특히 옆집 여자까지 네 사람이 선화 집 거실에서 술에 취해 욕망의 풍경화를 그려내는 클라이맥스 부분이 빼어나다.

홍상수 영화는 결국 배우가 아닌 감독의 영화다. 그렇다고 유지태 김태우 성현아의 겸손하고 성실하게 작품과 어울린 연기를 폄하하긴 어렵다. 감독 자신의 명성에 비례해서, 홍 감독의 영화 속 배우들은 신작에 가까울수록 대체적으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그리고 홍상수 영화를 좀더 효율적으로 읽어내기 위한 제언 하나. 그의 독특한 제목들은 구체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거기서 풍기는 분위기만을 따온 것일 확률이 높다. 루이 아라공 시구에서 따온 이번 제목 역시 종종 ‘지적인 트릭’을 구사하는 ‘홍상수식 작명법’의 한 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