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호(76) 한빛문화재단 이사장은 티베트 불화(佛畵)인 ‘탕카’의 세계적인 컬렉터로 유명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탕카 수집에 몰두, 현재 소장하고 있는 탕카만 해도 총 2500여점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대영박물관 개관 250주년 기념 특별전 ‘티베트의 유산-한광호 컬렉션의 회화(Tibetan Legacy-Paintings from the Hahn Kwang-Ho Collection)’를 개최해 세계 미술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광호 이사장의 본업은 사업가. 독일계 제약회사인 한국 베링거인겔하임의 명예회장이자 농약제조 회사인 (주)한국삼공의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 종로3가 화공약품 원료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했다고 한다. 탕카 외에도 1962년부터 40여년 동안 도자기ㆍ부채ㆍ서화ㆍ춘화 등 한국 및 동양미술품 2만여점을 수집해왔다.
지난 3월 3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한국삼공 사무실에서 한 이사장을 만났다. 7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고급스러운 도자기와 미니 불상 등이 눈에 띄었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였다. 한 이사장은 “1952년쯤 골동품을 잘 아는 독일인을 알게 됐는데, 그가 겸재 정선의 그림 등을 독일로 반출하는 것을 보고 ‘야난났구나!’ 싶은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며 40여년 동안 문화재 수집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탕카를 수집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1988년 1월인가 당시 주한일본대사였던 야나기씨가 관저로 나를 초대했는데 그때 기마민족설로 유명한 학자인 고(故)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박사를 만났다. 에가미 박사가 내 컬렉션을 보더니 “좋은 탕카가 많으니 이것에 주력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때부터 열심히 수집했다. 에가미 박사도 개인박물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대만, 홍콩 등을 여러 번 다녔다.”
한 이사장이 갖고 있는 탕카는 한빛문화재단 소장이 2000여점, 개인 소장이 500여점 정도 된다. 중국 문화혁명 당시 수많은 티베트 유물은 훼손되고 반출되었는데, 이를 가장 많이 수집한 컬렉터로 알려진 이가 바로 미국의 ‘루빈(Shelley and Donald Rubin)’이다. 하지만 한 회장의 탕카가 양과 질에 있어서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한 이사장이 탕카를 모을 당시만 해도 루빈컬렉션도 초보단계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모았다고 한다.
-탕카 유물을 수집한 과정이 궁금하다.
“주로 런던, 뉴욕, 홍콩, 일본, 중국 베이징에서 수집했는데 1년은 거의 매달 출장을 갔다. 베이징에서는 반출이 어려웠고, 가장 많이 산 곳은 런던 켄싱턴 앤티크거리였다. 처음에는 가짜에 많이 속았다. 골동품이란 게 경우에 따라서는 1만원짜리도 100만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또 후손 중에 국보가치가 있는지 모르고 경매로 팔아넘기는 경우도 있어서 거저 사는 것이나 다름없이 싸게 살 때도 있었다. 그래서 반드시 내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산다. 누구도 아마 나보다 싸게는 못 살 것이다. 2000달러에 샀는데 지금은 2만달러, 3만달러 이상인 것이 수두룩하다. 가장 비싼 탕카는 7만달러(약 8000만원)를 주고 샀는데 현재 2배 이상 줘도 사지 못한다.”
까다로운 절차에 어려움 겪기도
-작품 수집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에피소드가 아주 많다. 우리나라는 제한이 어찌나 많은지. 외화도 외국에 1만달러 이상 못 가지고 가고 수표도 못 쓰게 했으니까. 한번은 홍콩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했는데 돈이 부족했다.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나갔다오는 사이에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서 온 이들에게 팔려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바로 결제가 가능하니까. 그 전에는 공항에서 입국할 때 밀수꾼 취급을 당하기 일쑤고 압수도 많이 당했다. 국내에 들어오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러니 외국과 경쟁이 되겠나. 춘화(春畵)도 수집했는데 그것은 더욱 기가 막혔다. 거의 도둑놈 취급을 당했으니까. 그래도 요즘은 100년 이상 된 탕카(회화의 경우)는 공항에서 감정 없이 바로 통과된다.”
최근에는 그의 명성이 알려져서인지 작품을 소장한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보내기도 한다. 2001년에는 한 이사장의 컬렉션을 일본 5개 도시에 순회전시했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일본의 한 탕카 수집가가 그에게 자신이 소장한 50여점을 모두 팔기도 했다. 한 이사장은 “예전에는 닥치는 대로 샀으나 최근에는 워낙 수량이 많아 꼼꼼히 살펴본 다음 최종 결정을 한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이 수집한 탕카의 특징은 무엇인가.
“일본인들에 비해 서양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많이 갖고 있다. 내 컬렉션이 주목받는 이유는 시대별로 다양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13∼14세기 탕카부터 20세기 탕카까지 가지고 있다.”
-탕카의 보관은 어떻게 하나.
“유물은 유물 종류에 따라서 온ㆍ습도 조절이 필요한데 각각 유물 성격에 맞는 장(欌)이 필요하다. 탕카는 오동나무 서랍장을 짜서 눕혀서 보관한다. 탕카는 걸어두면 천 자체의 하중이 부담을 주기 때문에 상한다. 대영박물관 전 관장인 로버트 앤더슨씨는 한빛문화재단 이사로 건축고문도 맡고 있다. 1999년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 화정박물관을 전시실로 사용해왔으며 내년 5월쯤 이곳 평창동 분관에 수장고와 전시실을 새로 꾸미는 등 리모델링해서 새로운 화정박물관으로 재오픈할 예정이다.”
티베트 불교미술의 정수인 탕카는 보통 면(綿) 바탕에 광물성 채색과 금니(金泥)로 제작된다. 국내 불교미술의 탱화와 비슷한 양식을 갖고 있으며,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의 이치를 담고 있다.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는 1300년간 이어진 티베트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티베트인들의 의식세계가 집약된 독특한 예술품이자 도상학(圖像學)적인 면에서 우리 불교회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영박물관 한국관 설립에 기여
-1997년 대영박물관에 100만파운드(약 16억원)를 기부해 2001년 대영박물관에 ‘한국관’이 생기도록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대영박물관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1968년 독일 구텐베르크 박물관에 갔다. 중국관과 일본관은 훌륭한 데 비해 한국관은 너무 형편없었다. 기존에 있던 해강 김규진(근대 화가), 소호 김응원(흥선대원군 당시 난초그림으로 유명)의 작품을 내가 소장하던 작품으로 교체해줬다. 하지만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다른 작품도 기부하겠다고 했더니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대영박물관으로 눈길을 돌렸다. 1965년쯤 처음 대영박물관을 찾았는데 한국관도 없이 복도 한 구석에 도자기 몇점만 놓여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100만파운드를 기부했고 작품을 구입시켰으며 한빛문화재단에 있는 좋은 작품은 빌려가라고 했다. 그 돈으로 산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대영박물관 250년사’ 도록에 수록돼 있다. 최근에 2차 기부를 하려고 하는데 법이 바뀌어서 세금을 30∼40% 내야 한다. 몇번 정부에 얘기했지만 소용없어서 일단 보류 중이다.”
한광호 이사장은 탕카 외에 에로틱 미술품도 상당량 소장하고 있다. 그 외 한국 미술품과 부채 등도 박물관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그는 그 작품들을 ‘탕카의 예술(Art of Thangka-한영판·일영판) 1ㆍ2ㆍ3’ ‘티베트의 미술’ ‘중국미술 소장품’ ‘유럽과 동아시아 부채’ 등의 간행물로 펴내기도 했다. 컬렉션에 미쳐 골프도 못치고 남다른 취미생활도 없지만, 그의 문화재 사랑은 각별하다.
고려범종(梵鐘)을 대영박물관에 기부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문화재의 반출에 대해 엄격한 국내 정서상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문화재를 외국에 보내자고 하는 것은 매국노지만, 한국에 많은 문화재를 외국에서 전시하자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대영박물관에 고려 범종을 기부해서 영구보존하고 이것이 한국의 고려시대 작품이라는 것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게 더 낫다고 본다. 인사동에 값싼 가야토기가 많지만 해외로 반출할 수 없다.
내가 한국 작품을 많이 수집하지 않은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20년 전에 내가 수집할 때 일본작품은 ‘왜색’이 난다고 했고, 중국작품은 ‘떼놈’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경쟁이다. 한국의 박물관에 한국 문화재만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에는 전세계 유물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우리 것만 모으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수십년 전에 이곳 평창동 사무실 뒤쪽 8300평을 박물관 자리로 사두고 재단에 등록했다. 하지만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서 박물관 허가가 나지 않는다. 허가를 내주면 그동안 수집했던 컬렉션을 총집합해서 서울의 명소로 만들고 싶다.
일본의 좋은 박물관에 가보면 정원도 잘 꾸며놓고, 식당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오락시설도 있다. 휴일에 사람들이 박물관을 찾아 산책도 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영리목적도 아니고 시민공원화해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데도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아 너무 아쉽다. ”
한광호 이사장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한빛문화재단과 화정박물관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280억원 정도의 자금을 축적해놓았다고 한다. 그는 “세금을 20억원이나 내라고 통보를 받는 등 ‘죄인’ 취급을 당할 때면 너무 안타깝다”며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박물관을 지어야 할 텐데 조금 걱정된다”고 말을 맺었다.
진행 및 정리=(서일호 ihseo@chosun.com)
(이 기사는 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