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고서화가 걸려있는 뱅센느 자택에서 강씨와 마틴, 그리고 딸 인아씨(맨 왼쪽)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강씨 부부는 “우리 역시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사는 평범한 부부”라며 활짝 웃었다. 아들 나일씨는 방학을 맞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날아가서 함께하지 못했다.

파리시 외곽 뱅센에 있는 리외탕 하이츠 거리. ‘17’이란 번지수가 적힌 아파트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씨의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우선 신발들이 모두 현관문 밖으로 쫓겨나 있었다. ‘파리지엔’이 된 지 20년이 넘도록 실내에서 맨발 생활을 즐기는 강씨의 고집 때문이다.

인테리어도 다분히 한국적이었다. 손때 묻은 약장과 서랍장, 빛 바랜 고서화에 이르기까지. 주방 옆에는 놋으로 된 식기들이 소반 위에 놓여 있었는데, 강씨의 부인 마르틴이 한국 음식을 즐겨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양적인 가구와 소품들 사이사이에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유럽식 앤티크와 모던한 가구들. 옛것과 새것, 동양의 물건과 서양의 물건이 적절히 어우러져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집안 분위기는 파리라는 다국적 도시에서 강씨와 그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뭣보다 강씨의 부부 살이가 재미있다.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미소년’의 이미지를 간직한 강씨에게 마르틴은 가장 미더운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프러포즈를 한 쪽도 마르틴이다. “26년 전 파리에서 연주하는 남편의 모습에 반했고 그 감동은 지금도 변함없어요.(웃음) 시댁의 반대로 5년간 헤어져 있었지만 서로 믿고 사랑하니까 다시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강씨가 프랑스 여인을 사랑하게 된 사연도 각별하다. “서양 여자답지 않게 곧고 진지한 성격이 좋았어요. 마르틴 역시 피아노 연주자여서 굴곡 많은 예술가의 어려움을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후 ‘손해’를 본 쪽은 오히려 마르틴이다. 활발한 연주 여행으로 1년의 절반은 집을 비우는 강씨 때문에 마르틴은 육아와 가사 그리고 피아노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강씨가 아내를 고마워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고 애를 많이 써요. 어머니에게 김치 담그는 법부터 꼬리곰탕, 젓갈요리 하는 것을 배워 파리에서도 종종 한국식 잔치를 엽니다. 매운 음식도 저보다 훨씬 잘 먹습니다.”

두 아이에게도 마르틴은 시어머니가 지어준 ‘나일’과 ‘인아’라는 한국식 이름을 기꺼이 선물했다. “한국의 효(孝) 전통이 아름답잖아요. 부모 자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두 나라는 크게 다르죠.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는 게 유럽식 사고라면, 나를 낳아 길러준 부모를 성심성의껏 모셔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한국이에요.”

덕분에 나일(20)과 인아(18)는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다. 두 남매는 부모에게 칭찬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인아는 “성적을 잘 받아와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에게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며 투덜댔다. 강씨는 “칭찬이 지나치면 노력하지 않는다. 인내는 요즘처럼 산만하고 자유분방한 시대에 아이들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저는 아이들이 돈이나 외향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아내 역시 어릴 때부터 어느 정도의 인생 훈련이 필요하다고 믿는 쪽입니다.” 대신 진로를 선택하는 건 아이들에게 맡겼다. 부모가 모두 음악을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일이는 영화를, 인아는 문학을 선택했다. 자크 프레베 영화학교 2학년에 다니는 나일씨는 특히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다. 방학이면 한국에 들어오는 이유도 홍상수·김기덕·임권택 같은 감독들의 촬영현장을 쫓아다니기 위해서다.

한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시아인·아프리카인·미국인 등 다양한 인종들에 뒤섞여 살았는 걸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오히려 문화적·역사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요? 부모님 역시 자신들의 사랑과 결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