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톱(top)’이 아니잖아요. 연기자는 잘못하면 대중들에게 쉽게 잊혀질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워요. 작품 하나만 하는 것도 불안할 정도예요.”
서울 태평로의 한 식당에서 만난 MBC ‘대장금’의 ‘연생이’ 박은혜. “대작을 이제 막 끝냈는데 쉬고 싶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결연’한 눈빛을 번뜩이며 이렇게 말했다. 데뷔 6년 만에 시청자들에게 이름 석자를 또렷하게 각인시킨 그녀가 가쁜 숨 한번 몰아쉬고, 곧장 신작에 뛰어든 이유는 그런 절박함 때문인 듯했다. 네 자매의 개성 있는 인생살이를 그려나갈 SBS 새 주말드라마 ‘작은아씨들’(24일 첫방송)에서 조용하지만 옹골찬 구석도 있는 셋째 딸 ‘현득’ 역을 맡았다. 6월 초 방송될 SBS 수목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에서도 비중 있는 악역을 맡은 그녀는 “제대로 된 ‘악녀’ 모습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고 싶다. 이제 그럴 만한 시기가 됐다”고 했다.
박은혜는 “‘현득’이 섬세하고 소심한 품성으로 설정돼 있지만 극중 가족관계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온 제 경험에 비춰볼 때 납득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며 “직접 작가선생님에게 제 의견을 말씀 드렸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딸만 있는 집의 딸들은 성격이 밝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 집을 보면 알 수 있죠. 저희 집이 바로 딸만 넷인데, 도대체 시끄러워서 가만히 TV를 볼 수가 없다니까요.” 어려 보이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그리고 여느 연예인들 답지 않게 박은혜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98년 ‘LA 아리랑’으로 데뷔, 영화 ‘짱’, ‘천사몽’, ‘찍히면 죽는다’ 등에 출연했던 그녀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얼굴도, 이름도 아닌, ‘이미지’로만 대중들 뇌리에 남아 있던 연기자였다. 화장품CF에서 채시라 옆에 등장, “언니 참 뽀얘 보인다”라고 말하거나, 맥주CF에서 유지태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박은혜의 모습을 사람들은 늘 지켜봤지만 구태여 그녀에 대해 알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1년3개월간 공백기를 깨고 출연한 ‘대장금’을 통해 스타의 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연히 이병훈 PD님 눈에 띄어 ‘대장금’에 캐스팅됐어요. 운이 좋았죠. 연생이는 평소 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런 박은혜지만, 서울예전 광고창작과 재학 당시에는 “연예인 하고 싶어서 우리 학교에 들어왔느냐?”는 선배들의 말이 제일 싫었다고 했다. CF 연출을 ‘업(業)’으로 삼고 싶었던 그녀는 용돈을 벌기 위해 가볍게 시작한 잡지사 모델 활동으로 ‘발목’이 잡혀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고, 이제는 녹록지 않은 근성까지 갖추게 됐다.
“영화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한때 오락 프로그램 출연을 기피한 적도 있었어요. 이미지가 가벼워지는 게 싫었죠. 하지만 이제는 ‘박은혜’라는 존재를 우선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요. 제 이름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사람들이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보러오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