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巨匠)은 누구보다 자유롭게 창작하는 특권을 가진다. 오는 30일 국내 개봉되는 일본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성(性)에 관한 ‘이마무라식(式)’의 독특한 상상력이 스크린에 넘실대는 파격적 작품이다.
지난 97년 ‘우나기’로 칸 영화제에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마무라가 72세이던 2001년 내놓은 ‘붉은 다리…’는 사실성(事實性)의 굴레를 훌쩍 벗어던지고 은밀하고 코믹한 성인용 팬터지 같은 분위기로 전 편을 끌고 간다.
‘붉은 다리…’도 ‘우나기’처럼 인생의 벼랑으로 내몰려 가는 남녀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충격까지 안기는 설정은 여주인공의 기이한 성적(性的) 특성이다. 실직한 중년사내 요스케(야쿠쇼 고지)가 친구의 유서 내용대로 보물을 찾으려고 찾아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예쁜 여자 사에코(시미즈 미사)는 성욕이 점점 쌓이면 몸에 물이 차올라 몸 밖으로 흘러넘치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요스케는 그녀에게 끌려 관계를 맺으면서 “앞으로도 물이 차오를 땐 내가 도와주겠다”고 자못 ‘엄숙하게’ 말한다. 갑갑하기만 한 인생을 살다 낯선 마을의 알 수 없는 여성에게서 탈출구를 발견한 중년 사내는 이 마을의 어부가 되어 눌러살면서 그녀 곁에 머문다. 그리고 ‘서로를 돕는’ 이 기이한 성행위를 계속한다.
‘붉은 다리…’에서 설정보다 더 기발한 건 묘사에 담긴 영화적 상상력이다. 성행위 하는 순간 여자는 몸에서 분수처럼 세차게 물을 뿜는다. 따뜻한 그 물은 온 방을 적시고 집 밖으로 나와 강물로 흘러 들어가고, 고기떼들은 그 물에서 헤엄치며 낚시꾼들을 행복하게 한다. 해소하지 못하면 점점 차오르는 욕망에 관한 은유이자, ‘물’로 종종 상징되는 여성성에 관한 묘사이면서도 동화처럼 황당하고 우습기까지 하다. 이마무라 감독은 은밀하고 에로틱한 이야기를 ‘야하면서도 코믹하고 기발한’ 묘사들로 채워가며 거장의 작품을 엄숙하게 감상하려던 모든 팬들을 폭소짓게 한다. 그 웃음은 세상살이에 관한 백발 노(老) 대가의 은밀한 농담 같은 영화의 분위기를 빚으면서, 성 묘사를 보는 관객의 민망함을 덜어주는 완충(緩衝) 기능을 한다.
직장도 잃고 아내의 사랑도 식어가 삶이 힘겨운 사내는 자신을 그토록 필요로 하는 여성에게 사명감(?)을 느끼며 그녀의 물이 차오를 때마다 전속력으로 달려가 도와준다. 여자도 자신의 증상을 치유하지만, 무기력했던 사내 역시 삶의 에너지를 되찾으며 일어선다.
감독은 극 중 떠돌이 철학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쩨쩨하게 살지 말고 욕망에 충실하자고. 욕망에 충실한 게 멋진 삶이야.”
고통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인간이 자살하지 않고 계속 사는 이유는 여자의 미소 때문이라는 염세주의 철학자의 말처럼, 이 별난 필름은 삶을 지탱해가는 활력의 샘이 원초적 욕망임을 새삼 환기하며 팍팍한 우리 삶을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