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회 홍콩 특파원 <a href=http://db.chosun.com/man/><font color=#000000>[조선일보 인물 DB]</font><

"이제부터 나는 '정치인' 아닌 '타이베이 시장 마잉주!'"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54) 타이베이(臺北) 시장.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에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 절제된 생활로 유명한 대만 최고스타다. 법무장관을 거쳤고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과 담판, 권좌에서 끌어내렸을 정도로 정치력도 만만찮다.

민진당파 택시기사 황샤오멍(黃昭孟)씨는 “(이번에) 마 시장이 나왔으면 천 총통을 안 찍었다”고 말했고, 주부 장샤오화(張曉華)씨는 “(마 시장은) 쿨(Cool)!” 하며 웃을 정도로 만인의 스타다. 천수이볜(陳水扁) 총통도 1998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그 때문에 고배를 마셨다. 대만인들에게 ‘마잉주’는 차세대 희망이다.

야당 롄잔(連戰)·쑹추위(宋楚瑜) 러닝메이트가 그를 ‘선거 총간사’로 전면배치한 것은 질 수 없는 게임을 선언한 최강수 카드였다. 그는 종횡무진 활동해 선거 하루 전까지 50만표 이상 승리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선거 하루 전 총풍(銃風·천 총통 피격사건) 사건으로 그는 일생일대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롄잔 주석은 승리를 도둑맞자 선거불복을 선언, 총통부 앞 밤샘 연좌시위를 시작했다. 롄잔·쑹추위 후보 옆으로 선거참모들이 속속 되돌아왔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마잉주 총간사’는 오지 않았다. “마잉주는 어디에 있는가?”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그는 경찰국 지휘소에서 수도 치안을 지휘 중이었고,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이제 야당 선거 총간사가 아니다. 지금은 타이베이 시장이고, 치안을 책임져야 한다.” 그는 ‘야당 정치인 마잉주’에서 ‘타이베이 시장 마잉주’로 돌아와 있었고, 적과 동지는 바뀌어졌다.

같은 시각 타이중(台中) 후즈창(胡志强) 시장(국민당)이 시위대에게 ‘어린이 불법선거’ 비디오를 보여주며 검찰서 바리케이드 돌파를 지휘 중이던 것과는 180도 달랐다. 지지자들을 통째로 잃어버릴 도박이었지만 그는 냉정하고 단호했다.

지난 22일 정오 총통부 앞 시위대 바리케이드 뒤편. 마잉주 시장이 확성기 3대를 양손에 감싸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다. 이 곳은 통제 중이다. 나팔을 불지 말라. 시민들이 불편해한다. 집으로 돌아가자. 출근하고 등교해야 하지 않는가. 냉정을 되찾고 법을 지켜 달라….” 21일 밤 이후 벌써 세 번째의 간절한 호소였다.

타이베이 시민들, 특히 총풍에 빼앗긴 승리를 되찾으려는 야당 지지자들조차 시장으로 돌아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섭섭하다’는 정도다. 2만9000표(0.22%) 차로 낙선한 롄잔(連戰) 후보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지금 타이베이는 어수선하다. 여·야가 두쪽으로 쪼개져 있고 시민들 간 노상 시비도 잦다. 시위대에 총통부 앞 경찰병력만 2600여명. 총통부 앞 어둠 속 서치라이트, 철조망 바리케이드의 모습이 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치안은 잘 유지되고 있다. 사고라 할 만한 물리적 충돌도 없다. 시위대 나팔과 깃발이 지도부 확성기 소리에 춤출 뿐이다.

그가 “나는 타이베이 시장이기 전에 정치인 마잉주, 야당 선거총간사 마잉주”라고 외쳤다면 어떠했을까? 타이베이는 지금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대만 역사상 절체 절명의 혼란기를 ‘철저 중립·냉정함’으로 지켜내는 ‘시장 마잉주’에게 대만인들은 마음 속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광회·홍콩특파원=타이베이에서·santaf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