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쓰신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일대사건’을 몇 번씩 읽고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민족적인 독특한 문화를 가진 나라가 강국’이라는 랑케의 말도 제가 민족주의에 경도된 계기가 됐습니다. 광복 후엔 한때 유물사관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한국사에는 그 공식을 적용하기가 불합리했습니다. …80년대엔 ‘신석기시대엔 국가가 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가 ‘식민사학자’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3일 서울 명지빌딩 20층에 자리잡은 ‘태평관 기영회(太平館 耆英會)’ 회의실. 모임 회원으로 제11회 월례회에 참석한 이기백(李基白) 전 한림대 교수가 ‘나의 한국사 탐구’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담담하게 회고했다.
이 자리는 학계와 문화계의 70세 이상 원로들이 모이는 ‘고담준론의 사랑방’ 같은 곳. 학교법인 명지학원(이사장 유영구)이 지난 2002년 12월 마련한 ‘태평관 기영회’는 명지빌딩 자리에 있던 조선시대 외교공관 ‘태평관’과 중국 송나라 때 은퇴한 현사들의 모임이었던 ‘낙양 기영회’에서 이름을 땄다.
32명의 회원들은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 권옥연 금곡박물관장, 권이혁 전 문교부장관, 김동길 전 연세대 부총장, 김동진 경희대 명예교수, 김백봉 경희대 명예교수,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박영숙 전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서명원 전 문교부장관,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 유현목 전 영화감독협회장,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고문, 이영덕 전 국무총리,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인호 전 서울대 교수, 이현재 전 국무총리, 정명환 학술원 회원, 정범모 전 한림대 총장, 정원식 전 국무총리, 조남권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장, 조순 전 서울시장,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차범석 전 연극협회 이사장,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 채명신 전 군사령관,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 최석우 한국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한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한철하 아세아연합신학대 명예총장, 황병기 연세대 특별초빙교수 등, 그 명단만으로도 호화롭다.
이들은 매달 첫 수요일 오전 11시 월례회에서 한 명씩 ‘담론’을 발표하고 수시로 모임을 열어 연구토론과 친목의 시간을 가진다. 다음달 담론은 유현목 회원이 맡게 되며, 연말쯤 그동안 발표한 담론들을 책으로 묶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