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는 이번 음반에 대해 "내 음악에 내가 잡아먹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김윤아(30)의 새 독집은 그의 변화무쌍한 음색만큼이나 불안하다. 가구들의 모서리만 어슴푸레한, 낯설고 어두운 복도를 걷는 느낌. 그녀는 이 음반에 ‘유리가면’이란 제목을 붙였다. “곡을 다 만들고 나니까, 여배우 여럿이 서로 다른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배우들은 모두 저였고, 가면은 투명한 유리였죠. 불안하게 들리지 않나요? 고장난 자동인형처럼.” 독창적인 음악, 독창적인 말솜씨…. 그녀는 사랑받아 마땅하다.

김윤아는 7년 전 자우림의 보컬로 등장해 메마른 대중음악 토양에 자줏빛(紫) 비(雨)를 뿌려 숲(林)을 일으켰다. 그리고 2년 반 전 네 멤버 중 처음으로 독집 ‘섀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Shadow of Your Smile)’을 내놓으며 자신은 물론, 한국 여자 뮤지션의 숲을 단숨에 확장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독집이다.

첫 곡 제목은 독일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영화와 같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녀는 “그 영화는 보지 않았고, 방 정리를 하다가 중학교 때 내가 쓴 산문노트에서 발견한 문구”라고 했다. 극히 단순한 피아노와 탬버린만의 반주에 맞춰 리버브(Reverb·잔향)를 뺀 김윤아의 마른 음색은, 1940년대 에디트 피아프나 70년대 제인 버킨의 음색처럼 ‘위험의 미학’을 들려준다.

김윤아는 전곡을 작사·작곡·프로듀스한 음악가이지만, 방송 녹화장 같은 ‘최악의 음향조건’에서도 빼어난 가창력을 발휘하는 보기 드문 ‘가수’이기도 하다. “제가 제 목소리를 싫어하지 않게 된 것은 얼마 안 돼요. 2~3집 사이의 제 목소리는 듣기가 괴롭거든요. 노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그는 “내게 어딘가로부터 받은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작곡이나 노래가 아니라, 남들이 못 느끼는 걸 느끼는 재능일 것”이라고 했다.

‘봄이 오면’이란 곡에는 국내 정상의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편곡·연주자로 참여했다. “주문생산하는 것 같아서” 숱한 세션 요청을 거절하는 이병우가 대중음악 음반에 참여하기는 96년 전람회 2집 이후 8년 만이다.

문재(文才)로도 이름난 김윤아의 가사는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나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같은 노래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증오는 나의 힘’에서 끝내 폭발한다. “고맙고 고마운 내 아버지/당신을 죽도록 이토록 증오한 덕에/난 아직 살아있고” 하며 그는 대중예술의 금기를 넘나든다.

“아버지는 몇 년 전 이미 돌아가셨어요. 노래에서 ‘아버지’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죠. 저는 음악을 하면서 제 안의 검은 것들을 다 토해내고 행복해졌어요. 그러나 10대 후반~20대 초반 제 안에는 분노와 증오가 가득했죠. 시스템에 대한 증오. 그 증오가 나를 살아있게 한 힘이었는데, 그게 이제 거의 사라졌으니 어디서 힘을 얻을까 하면서 쓴 곡이에요.”

그녀는 “음반 작업하면서 무서웠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내 음악에 내가 먹힐 것 같은 공포”라고 표현했다. “나의 ‘핵’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 말이죠. 내 꿈의 세계를 남에게 보여줄 것 같은 그런 위태로움….”

아스토르 피아졸라풍의 세련된 탱고가 담긴 ‘나는 위험한…’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하우 인센서티브(How Insensitive)’ 같은 느낌을 주는 곡 ‘멜랑콜리’, 피아노와 현이 장중하게 어울리는 타이틀곡 ‘야상곡’까지, 11곡 중 어느 하나 흘려듣기 어려울 만큼 강렬하다.

“자우림도 저도 너무 우울한 음악을 많이 해서, 올가을에 낼 자우림 5집은 ‘날펑크’로 가자고 했어요.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이처럼 웃는 얼굴이, 짙고 어두운 음악을 막 토해내서인지, 창백하도록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