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사약을 내려라!” “그렇게는 못하겠소….”

숙종이 내린 사약을 강제로 들이켜는 장희빈의 최후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왕건이나 이의민, 광해군이나 사도세자 같은 역사상의 인물들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역사책을 읽어서만은 아닐 터. TV 사극(史劇)이 끼친 영향이 크다.

그동안 역사학 연구자들에게 사극은 관심 밖의 일이거나 ‘역사 왜곡’을 일삼는 골칫거리였다. 악인을 의인으로 만든다거나 사건 발생의 인과관계를 뒤바꾸는 등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세계는 역사학 연구와 종종 충돌하곤 했다. 사극의 힘을 마냥 놔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일까. 강단 역사학자들이 드디어 사극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그 중에서도 1960년대 이후 영화로 2번, 드라마로 5번, 가장 많이 극화된 소재 중 하나인 장희빈을 골랐다.

‘장희빈, 사극의 배반’(소나무출판사)에서 정두희 서강대 사학과 교수(‘사극이 펼치는 역사는, 과연 역사인가’)와 김아네스 서강대 강사(‘사극 속의 장희빈은 어떻게 진화했는가’)는 “사극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만들어지는 (당대)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장희빈의 성격을 분석하는 시각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다. 김지미 주연 ‘장희빈’(정창화 감독·1961)이나 남정임 주연 ‘요화(妖花) 장희빈’(임권택 감독·1968)은 물론 1988년 전인화 주연의 ‘인현왕후’에서도 장희빈은 악독한 여성이자 질투의 화신이었다. 그 정반대엔 인현왕후라는 지고지순의 캐릭터가 있었다. 1970년대엔 “인현왕후를 쫓아내지 말라”고 시청자들이 방송국에 항의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 변화가 생겨난다. 1995년 정선경 주연의 ‘장희빈’을 거쳐 2002년 김혜수 주연의 ‘장희빈’에 이르면 장희빈은 신분 상승을 꿈꾸는 진취적인 여성으로, 마치 성공한 여성 CEO의 모습처럼 그려진다. 인현왕후 역시 순종적이고 온화한 ‘천사표’가 아니라 질투심을 참지 못하는 ‘보통 여자’로 바뀐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 한편 반공이데올로기의 퇴조로 흑백론적 세계관이 약화된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고 김아네스씨는 말한다.

하지만 사극은 명백히 잘못된 정보를 전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백성들은 소문이나 노래에 ‘민심’을 담아 인현왕후의 복위를 바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현왕후를 옹호하는 서인(西人)들이 노래와 소설 ‘사씨남정기’를 유포했으며, 따라서 이는 ‘조작된 여론’에 불과했다고 김씨는 지적한다. 후궁이 중전에게 대드는 하극상이 자주 등장하지만 이것도 있을 수 없는 설정이라는 것이다.

‘사극’이 ‘역사’로 받아들여지곤 하는 현실에 대해 정두희 교수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역사적 상대주의’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의 지적 풍토에서는 TV 사극의 역사 해석이 ‘절대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고 우려한다. TV라는 매체가 갖는 주입의 일방성도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결국 사극의 가치를 폄하할 수만은 없다고 결론짓는다. 어느 역사학자의 해석도 객관적·절대적일 수는 없고, ‘조선왕조실록’조차도 편찬자의 주관성이 담긴 자료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오히려 “사극이 역사이기를 주장하고 문학적 상상력을 잃는 순간 자신의 고유 가치를 잃는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