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히잡(이슬람교 여성들이 쓰는 머릿수건) 금지 법안’이 유럽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10일(현지시각) 프랑스 하원은 공립학교에서 이슬람교 여성들의 히잡을 비롯,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찬성 496표, 반대 36표의 압도적 표차로 가결했다. 다음달 3일 상원에서도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벨기에의 일부 정치인도 비슷한 법안을 만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히잡 금지의 배경=오는 9월 새 학기부터 프랑스 내 공립 초·중·고교에서는 히잡, 대형 십자가, 유대교 모자 등 명백한 종교적 상징물이나 의복 착용이 금지된다. 다만, 사립학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프랑스 내 각 종교·인권단체가 반발하지만 유독 '히잡 논란'이 부각되는 이유는 프랑스 내 이슬람 인구가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500만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논란은 1~2년 된 얘기가 아니다. 1989년 프랑스 법원 판결에서는 종교적 상징물의 허용 여부를 학교장 재량에 맡겼다. 지난해 10월 파리 근교의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이슬람교도 자매가 히잡 착용 때문에 퇴학당하면서 논란은 커졌다.
프랑스 정부가 구성한 전문가위원회는 3개월간의 논의 끝에 지난해 12월 11일 “공공 장소에서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이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정부가 법안을 만들어 의회에 상정했다.
◆교실은 중립지대다!=프랑스 정부가 내세우는 원칙은 '국가와 공교육은 종교로부터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세속주의다. 이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 뿌리를 두며, 제3공화국 시절이던 1905년 법으로 공포됐다.
시라크 대통령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는 프랑스공화국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이며, 이를 약화시키는 어떤 행동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법안까지 만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밑바탕에는 9·11 테러 이후 확산되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경계감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프랑스인의 다수가 히잡 금지를 지지한다. 히잡 착용이 종교적 극단주의로 비치거나,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강압과 차별을 상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역사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영화배우 이자벨 아자니 등 유명 인사 67명은 “히잡은 여성들에게 참을 수 없는 차별”이라며 집단 호소문을 낸 적도 있다.
◆종교의 자유를 달라=이슬람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강요받는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이슬람교에 대한 서구의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유럽의 무슬림잡지 Q-뉴스의 파레나 알람 편집장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 나 스스로 히잡을 선택했다"면서 "프랑스의 세속주의 원칙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 국무부의 존 하포드 국제종교담당 대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종교를 평화적으로 표현할 자유가 있고, 이를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면서 프랑스의 히잡 금지 법안에 반대했다.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영국의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은 “이 법안이 반 이슬람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시라크 대통령이 지독히 위험한 게임을 한다”고 비판했다.
(파리=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