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학교 옥상 위의 대결을 하려고 쌍절곤을 든 현수(권상우). 쌍절곤을 앞으로 튕겨 치려는 ‘배면 늘어뜨리기’ 자세다.

통제와 억압의 한국 70년대를 고교 울타리 안에서 온몸으로 감당한 청춘들을 반추하는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는 흘러간 시대를 복원해낸 에피소드들의 성찬(盛饌)이다. 학생들을 구타하는 군복차림 교련 교사를 묘사하며 몸서리치게 만들다가도, 향수어린 ‘그때 그 풍경’들로 30·40대들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파란 제복의 버스 ‘차장’, 양은 도시락, 선도부, 주황색 공중전화…. 그중에서도 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대한민국 대다수 남자들을 붙드는 건 ‘이소룡 무술’에 빠지는 주인공 현수(권상우)의 모습, 그리고 그가 영화 내내 휘두르는 쌍절곤(雙節棍)이다.

공부도 싸움도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에게 말 한번 제대로 붙이지도 못하는 현수는 잿빛 같은 시대를 ‘젖은 짚단 태우듯’ 살아간다. 그런 현수에게 영화에서 만난 이소룡 무술은 굉음 같은 충격이 된다. 그는 독백한다. “드디어 나는 할 일을 하나 찾았다. 길은 정해졌다.” 그러곤 이소룡의 분신(分身) 같은 도구, 쌍절곤을 새로 산다. 그 쌍절곤은 현수가 응어리를 폭발시키는 모든 순간과 함께한다. 교내 주먹서열 1위에게 도전한 옥상의 한판에서도 현수는 쌍절곤으로 상대를 난타한다. “대한민국 학교들, ×까라 그래” 라며 그가 학교 유리창들을 닥치는 대로 부술 때 휘두른 것도 쌍절곤이다.

실제로 그 시절 돌파구를 찾아 헤매던 한국의 상당수 청춘남학생들에게 이소룡은 액션 스타를 넘어 우상이고 영웅이었다. ‘아비요~’ 하는 괴성을 지르며 상대를 ‘파파팍’ 후려치는 이소룡의 광기 어린 손발짓만큼 후련한 대리만족도 없었다. 요즘 10대들이 ‘매트릭스’를 흉내내듯, 그때 많은 학생들은 동네 문방구점에서 산 쌍절곤을 휘두르며 이소룡이 됐다. ‘말죽거리…’에서 현수가 새로 산 알루미늄제 쌍절곤에 검은색 테이프를 감는 대목도 흔했던 풍경이다. 테이프를 감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소룡이 쓰는 쌍절곤이 검은 색이기 때문이다.

쌍절곤은 본래 중국 송(宋)나라 태조 조광윤이 창시했다고 전해지는 중국의 무기지만 세계에 알린 건 역시 이소룡. (‘쌍절권’이니 ‘쌍절봉’이니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곤봉이란 뜻의 곤이 정확한 명칭이다.) ‘정무문’ 개봉 때 홍콩의 일부 평론가들은 “쌍절곤 묘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표값은 나온다”고 했다. 한 가지, 쌍절곤은 잘못 쓰다간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소룡 저 ‘쌍절곤 백과’에 보면 “무술의 바탕이 없는 이가 휘두른다면 적을 치기 전 먼저 자기 몸을 맞기 쉽다” 했다. 실제로 옛날 10대들이 제 쌍절곤에 제 머리통을 맞았고 영화도 그 풍경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