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토 유니온의 등장은 우리 대중음악이 건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왼쪽부터 김문희 윤갑열 임지훈 김반장 정상권.

지난 10일 MBC TV 음악순위 프로그램인 ‘음악캠프’에 낯선 밴드 하나가 출연했다.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이란 이 밴드는 이름만큼이나 멤버들 생김새도 이른바 ‘방송용’은 아니었다. 장나라와 MC더맥스가 1위를 다툰 이날, 아소토 유니온은 ‘이달의 신인’ 코너에 나와 ‘싱크 어바웃츄(Think About’chu)’란 곡을 연주했다.

이것은 사건이었다. 2001년 5월 홍대앞 놀이터를 시작으로, 줄곧 길거리에서 연주해온 이 돈없고 힘없는 밴드가 2년8개월 만에 거대 지상파 TV의 초청을 받은 것이다. 작년 11월 말 나온 이들의 첫 앨범은 한달 반 만에 1만장 넘게 팔렸고, 아직도 음반 차트 상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밴드에 ‘1만’이란 거의 ‘꿈’에 가까운 숫자다.

말 그대로 그루브(Groove·흥겨운 가락)가 넘실대는 이들의 솔(Soul) 재즈는 1970년대 이후 뚝 끊겨버린 한국의 ‘펑키(Funky) 뮤직’을 단박에 이어냈다. 펑키 뮤직은 록처럼 시끄럽지 않으면서도 절로 흥겨운 흑인 음악이다.

아소토 유니온의 길거리 공연 모습.

이들의 등장은 그간 ‘얼짱’(얼굴이 가장 예쁜 사람)들만 가득 싣고 대중음악계를 미친 듯 누비던 폭주기관차가 이제 기지창에 들어간다는 신호다. 더불어 헤비메탈과 모던록뿐이던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음도 보여준다.

아소토 유니온은 흑인 음악이라곤 힙합과 ‘가짜 R&B’밖에 없는 우리 대중음악에 제대로 된 블랙뮤직의 리듬과 감성을 퍼나른다. 멤버는 김반장(보컬·드럼), 임지훈(키보드), 김문희(베이스), 윤갑열(기타)이다. 콩가 위주의 타악기를 다루는 정상권이 공연 때마다 이들을 돕는다. 다들 서른 안팎의 나이다.

본명이 유상철인 김반장은 “고교 때 싸우다 경찰서에 갔는데 강력반장이 김반장이었고, 카드 연체했을 때 빚 갚으라 재촉하던 카드사의 채권추심반장도 김반장이어서 ‘나와 김반장은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흔치 않게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하는 밴드 리더다. ‘아소토’는 흑인 원시종교인 부두(Voodoo)교 의식에 쓰이는 북의 이름으로, 이들 음악의 색깔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흑인음악이 서서히 붐을 이루는 건 댄스와 록으로 양분된 대중음악에 사람들이 식상하면서 빚어진 자연스런 귀결인 것 같아요. 길거리 연주 때 제일 기분 좋은 게, 나이드신 분들이 ‘음악이 아주 좋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어요.” 맏형 격인 임지훈은 김반장과 함께 “방에서 뒹굴다가” 밴드를 만들었다. ‘허가’없이 거리공연을 하다가 경찰에 쫓겨나기도 했다.

“우리 밴드는 언더 그라운드도 오버 그라운드도 아닌 ‘뉴 그라운드’라고 생각합니다. 언더란 이미지는 좀 위험해요. TV 역시 라이브면 나갈 거예요. 우리는 말로만 하는 ‘록 스피릿(Rock Spirit)’은 거부합니다.”

타이틀곡 ‘싱크 어바웃츄’는 느린 템포의 기타와 키보드가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김반장의 허스키한 보컬이 잘 어울린 수작(秀作). 힙합팀 CB매스의 ‘최자’와 ‘개코’가 참여한 ‘매드 펑크 캠프 올 스타즈(Mad Funk Camp All Starz)’는 펑키 사운드에 랩을 잘 입혀낸 곡이다. 재즈 트럼페터 이주한과 최고의 여성 래퍼 타샤(윤미래) 등이 음반에 참여했다.

멤버들은 ‘매드 펑크…’가 “시행착오가 많아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라고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이 음반은 재즈와 펑크를 기본으로 거의 모든 종류의 흑인음악을 다 보여주고 있다”면서 “우리말 가사와 펑키 리듬을 조합한 솜씨가 놀랄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우리 음반이 팔리는 게 사실 의외예요. 아마도 사람들이 새로운 걸 원하는 것 같고, 펑키 뮤직에서 흥겨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 미국에선 70년대에 다 했던 건데….” 이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또 거리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17일엔 압구정동 클럽 ‘소울 얼라이브(02-3442-7222)’에서 공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