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0일) 밤 9시45분 SBS TV ‘발리에서 생긴 일’로 채널을 고정하면 우리 연예계의 ‘희귀한 개성’을 만날 수 있다. 하지원의 고교 동창으로 연예인 지망생 역을 맡은 신이(본명 장승희)다. 지난주 제2회 방송 때 단 한 신(Scene)에 등장했을 뿐이지만, 그는 특유의 음색과 독특한 억양을 버무린 대사 하나로 자신의 명성을 단박에 확인시켰다.

구질구질한 자취방에서 뽀글뽀글한 소위 ‘장정구 파마’를 한 채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먹으며 오디션 연습을 하는 장면. 신이의 대사는 “벗으라면, 벗겠어요”였다. 방송 직후 SBS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그 ‘벗으라면 벗겠어요’가 도대체 누구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즉흥적으로 분위기를 한 번 만들어 본 건데, 재미있게 봐주셨나 봐요. 오전에 미용실에 갔는데, 파마해주던 언니가 ‘말라면 말겠어요’ 그러더라고요. 다음 회부터는 등장하는 장면도 거의 주연급으로 늘어났어요.”

시청자들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신이는 사실 젊은 관객들에게 익숙한 캐릭터다. 영화 ‘색즉시공’ ‘위대한 유산’ ‘낭만자객’에 출연한 뒤 그가 얻은 별명은 ‘여자 임창정’. 순진한 남자를 꼬셔서 잠자리에 들거나, 백수인 시동생을 사정없이 구박하고, 퇴폐적인 처녀귀신을 맡아 “철저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줘왔다. ‘꽃미남 꽃미녀’가 즐비한 연예계에서 그는 개성 있는 연기 하나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낭만자객’의 윤제균 감독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웃으며 ‘그 길을 계속 가면 앞으로 너의 시대가 올 거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윤 감독의 격려를 그는 “이거 ‘저주’ 아니에요?”라며 웃었다.

사실 드라마 속 연기지망생 방미희는 신이 자신의 경험과 상당 부분 겹쳐진다. 고향 대구에서 대경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그는 99년 무작정 상경해 오디션마다 쫓아다니며 시험을 봤고, 생계는 온갖 아르바이트로 해결해왔다. 맥줏집에서는 한 손에 500㏄ 잔 6개를 들고 테이블을 누볐고, 주유소에서는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었다가 된통 혼이 났으며, 장례식장 도우미를 맡아 음식도 날라봤단다.

그는 “연기는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최고라고 본다”면서 “돈도 돈이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중에라도 내가 그런 역할을 맡을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갑자기 이 ‘희귀한 개성’의 예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연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역할을 맡을 수도 있는데, 본명이 그런 식으로 퍼져나가면 부모님께 죄송스러울 것 같았다”면서 “점쟁이집에 가서 만든 이름인데 어떤 것 같으냐”고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