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루쉰, 반 고흐, 고야, 도미에, 카프카, 오웰, 카뮈에 대한 책을 써 냈던 저자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도저히 참지 못하는 법학자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의 신간인 이 책은 이번엔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사랑의 기술’(1956) ‘소유냐 존재냐’(1976) 등의 저서로 유명한 20세기의 ‘혁명적 사상가’ 에리히 프롬(Erich Fromm·1900~80)의 생애와 사상을 탐구한다.

박 교수는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유신시대를 ‘파시즘’으로 느꼈던 청년들에게 가장 소중한 귀감이 됐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신이 끝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민주화를 거친 오늘날의 우리 역시 진정으로 자유롭기는커녕 프롬이 말한 시장사회에서 다시금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실감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 지금의 우리는 도대체 뭔가? 프롬이 말한 ‘권위주의적’ ‘시장 소유지향적’ ‘집단 과대망상적’ ‘죽음지향적’ 등의 성격은 지금 우리 자신의 사회적 성격이 아닐까? 이 책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박 교수는 프롬 사상의 세 가지 핵심을 무신론 신비주의, 사회주의, 정신분석학으로 해석한다.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33년 나치를 피해 미국과 멕시코에서 살았던 프롬은 사상가로선 보기 드물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지만 평생 돈을 무시하고 산 ‘비(非)현대적’인 인간이었다. 일생 동안 그는 오전을 돈과 무관한 사색의 시간으로 보냈고, 직업으로서의 정신치료는 오후에만 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것은 유대인 가정의 전통인 ‘상업주의의 부정’의 결과라고 박 교수는 말한다. “소유하는 것(having)을 부정적 실천으로 지향하는 것은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의 삶, 곧 ‘존재하기(being)’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 신조에 따라 프롬은 “현대는 병들었다”고 진단하고, 그 결과 개인도 병들었다고 말한다. 시장과 이윤 지향의 소비주의, 정보의 신속한 전달이라는 실용적 동기가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동기에 우선해 “인간을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프롬은 “산업화 사회를 벗어나면서 자율적인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프롬이 우리에게 남겨준 꿈은 ‘인간이 자유롭고 자치하는 삶을 통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세계’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이 책이 결코 ‘프롬에 대한 찬양서’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특히 선불교와 관련된 프롬의 책 ‘선(禪)과 정신분석’이 주요 공격대상인데, “프롬은 동양 사회나 불교에 대해서는 거의 맹목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