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 때 제물포항의 모습. 중국인 회사 간판,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인과 두루마기를 입은 조선 노인이 함께 걷는 풍경이 이채롭다.

1904년,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간 제물포항(오늘날의 인천항). 멀리 갯벌 위에 주저앉아 있는 크고 작은 선박들이 보인다. 항구로 가는 대로변 양쪽에 늘어선 것은 둥그스름한 초가지붕이 아니라 예각(銳角)이 또렷한 일본식 주택들.

기모노를 입고 양산을 든 일본 여인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한국 노인이 성큼성큼 걷고 있다.

이 해에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반도에 왔던 호주 사진작가 조지 로스(George Rose·1861~1942)는 “큰 길을 따라 중국인과 일본인 거주 지역이 갈린다”며 “구두점 ‘푸크 리(Fook Lee)’, 양복점 ‘렁 키(Lung Kee)’는 모두 중국인 회사의 조선 지점들”이라고 기록했다.

장날 서울은 하루종일 물건값을 깎으면서 실랑이를 하는 시골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나무 우산 가게와 지게꾼, 떡을 먹고 있는 소년의 모습도 보인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을 놓고 열강의 각축이 치열하던 구한말, 푸른 눈의 외국인이 기록한 한반도의 모습이 100년의 세월을 건너 왔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은 호한재단(AKF)과 함께 오는 21일까지 ‘1904, 호주가 본 한반도’라는 제목으로 조지 로스 사진전을 열고 있다. 호한재단은 지난해 4월 대학로에서 창립 10주년 기념 전시회를 가졌고, 오는 11월까지 김천, 대전, 거창, 동해, 거제 등에서 전국 순회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올 1월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렸던 ‘먼 나라 꼬레 - 아폴리트 프랑뎅의 기억 속으로’ 특별전을 관람한 사람이라면, 조선 주재(駐在) 전권 공사를 지냈던 프랑스 외교관 아폴리트 프랑뎅의 시선과, 성공한 사업가로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며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던 호주 사진작가 조지 로스의 시선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와집이 보이는 마을 위로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처럼 높이 솟아 있는 서울 근교 마을. 멀리 땔감을 지고 가는 황소 한 마리가 보이고, 정면엔 갓을 쓴 남자들의 모습도 선명하다.

이번 전시회는 100년전 동시대의 호주와 한국 사진을 30여점씩 한꺼번에 만날 기회이기도 하다. 서울의 장날과 호주 멜버른컵 경마대회 풍경, 용산 나루터와 시드니 모스만의 배, 가래질하는 조선 농부와 소떼를 모는 호주 여성 등 지구 반대편 옛 사람들의 닮은 꼴과 다른 꼴이 한 눈에 들어온다.

120여평의 너른 반원형 전시장에 들어서면, 초입(初入)에 낯익은 듯 낯선 보신각 종루(鐘樓) 주변 풍경을 만난다. 당시 보신각은 전차 노선이 남대문로에서 종로쪽으로 꺾이는 지점으로, 오늘날과 같은 교차로였다는 것이 로스의 기록. 종로 남동쪽에 자리잡은 모자 행상인 들 뒷편으로 길가에 널어놓은 빨래와 차양(遮陽)이 달린 인력거도 보인다.

지금도 파고다 공원에 남아 있는 원각사비와 10층석탑 사진에선 명동성당의 모습도 또렷하다.

흰옷에 짚신을 신은 조선인과 짙은 웃옷에 나막신을 신은 일본인이 뒤섞인 부산의 중심가. 로스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에서 일본의 영향이 가장 많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남대문 도성 위에서 찍은 당시의 서울 모습이 비슷한 앵글에서 찍힌 호주 타스메니아의 도시 풍경과 무척 닮아 있는 점도 신기하다.

이밖에 당시 서울의 남대문로와, 전찻길, 평양 모란대와 대동강, 부산 중심가, 제물포 부두 등도 볼 수 있다. 인력거꾼, 장옷을 입은 여인, 한강에서 빨래하는 여인 등 조상의 평범한 일상(日常)도 지금의 우리에겐 신기하기만 하다.

원래 조지 로스는 입체사진(stereograph)를 발명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제작된 특수 안경이 준비되지 않아, 계곡이나 원경(遠景) 사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는 뛰어난 입체감을 확인할 수 없어 아쉽다. 평양 모란대와 대동강의 뱃사공, 평양 전신소 등의 모습은 북(北)에 고향을 두고 온 어르신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을 듯. ☎(031)828-5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