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속세를 떠나거나 입산수도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 무슨 원한도 없고, 하고 싶었던 것이 안 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아직 건강도 기억력도 멀쩡하기에 종교를 통해 뭔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출가하기로 한 것뿐입니다.”
신문사 편집국장, 국회의원, 문공부차관, KBS 사장, 대학 총장 등을 역임한 박현태(朴鉉兌·70)씨가 고희(古稀) 나이에 출가를 결심, 화제가 되고 있다.
박씨는 오는 29일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열리는 불교 태고종의 예비 승려 교육과정인 ‘합동 득도 수계 산림’에 참가, 10월 22일까지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박씨는 교육기간 중 교리공부와 매일 108배(拜), 1보(步)1배(拜) 등의 수련과정을 거쳐 계를 받게 된다. 이를 위해 지난달 22일 서울 봉원사에서 면접과 필기 시험을 치른 박씨는 이미 삭발하고 수행 중이다. 태고종은 출가 연령을 50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지만, 종단 자체 심사를 거쳐 박씨에게만은 예외를 인정했다. 태고종 운산 총무원장 스님은 “박씨가 지난 80년대 불교신자 국회의원 모임인 정각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며 “수년 전부터 출가할 뜻을 내비치셨는데 최근 결심을 굳혀 종단에서도 특별히 그 뜻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큰 결심도 아니다” “아직 정식 스님도 아닌 자격 미달”이라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하던 그는 출가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서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복지 문제가 중요하지만,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출산율 저하 같은 문제 해결 등에 공신력 있는 종교단체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수행정진은 물론이고 힘 닿는 한, 기왕 할 바에는 본격적으로 종교의 사회역할 확대를 돕고 싶습니다.”
박씨는 “언론계, 학계, 관계를 거쳐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후배들과 경합하기는 싫었다”며 “대학 때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아 평소에도 불교 공부를 해오다 약 2년 전 결심을 굳히고 두 달 전쯤 머리를 깎은 후 의식을 위한 염불공부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많아 출가가 안 된다면 그냥 절에서 마당도 쓸고, 스님들 염불도 거들어 드리면서 지낼 작정이었다”며 “다행히 시험과 교육과정 참가가 허락된 만큼 정식으로 출가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수행정진하며 복지문제에도 관심을 쏟겠다”고 했다. 출가 후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건립 중인 백련사에서 주지로 일할 예정이다. 박씨는 그러나 “아직 때도 아니고, 얼굴 알려지는 것도 싫다”며 사진촬영은 완강히 사양했다.
박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6년 한국일보 기자로 출발, 한국일보 정치부장,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장, 11대 국회의원(전국구), 문화공보부 차관, KBS 사장, 방송협회 회장, 언론회관 이사장, 동명정보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또 1987년엔 한양대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