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야, 그렇게 그렇게 해를 보냈더니/ 어느덧 니가 졸업반이 되었구나/ 니만 믿고 살아온 애비 어미도/ 이제는 허리 좀 펴고 살 날 오겠구나/ 농사짓지 않고도 살 수가 있겠구나/ 남들은 샘이 나서 그런지/ 시방은 대학을 나와도 옛날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만….’ 윤승천의 시 ‘아버지의 편지’에는 힘겹게 뒷바라지해 대처(大處)로 유학 보낸 아들이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담겨 있다.

요즘 대학 졸업생들은 부모의 허리를 펴주기는커녕 새 짐을 얹기 십상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20대 중반이 지나고서도 부모에게 얹혀 사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캥거루족’이라는 신어(新語)가 등장할 정도다. 카드빚이 쌓여 집안살림을 거덜내는 예도 흔하다. 극심한 청년실업 탓이다. 20대 실업자는 33만여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44%에 이른다. ‘백수닷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성황이고, ‘졸업은 실업’이라는 자조적 말도 나돈다.

장기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본에선 15~24세 실업률이 1953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인 13.2%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늘상 집안에서 죽치는 이른바 ‘히키코모리’들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힘’이라는 뜻이다. 번잡한 외부세계를 싫어하고 집밖으로 나서길 두려워하는 이 은둔족들 가운데 6개월 넘게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악성 히키코모리가 수십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60%가 20~30대다.

요즘엔 자기만의 취미에 골몰하는 ‘매니아’와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일본의 ‘오다쿠(お宅)’도 애초엔 집(宅)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족을 뜻했다. 서구에선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코쿤(cocoon)족’이라고 부른다. 미국 마케팅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누에를 감싸는 ‘고치’처럼 ‘불확실한 사회에서 보호받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썼다가 일반화됐다. 타인과의 접촉이나 교제에서 스트레스받는 것을 거부하며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사람들이다.

칩거증후군이 유달리 심한 나라로 일본에 이어 한국이 꼽힌다. 취업난은 은둔족들을 더욱 늘릴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1% 떨어질 때마다 일자리 7만개가 줄어든다니 작년보다 3%포인트 내려간다는 올해에만 실업자가 20만명 넘게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몇년씩 백수로 지내다 보면 조직생활을 해나갈 적응력이 퇴화해 영영 낙오자가 돼버리는 것도 큰 문제다. 인터넷에 몰두하는 ‘사이버 코쿤족’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그런 자식 모습을 지긋지긋하게 봐야 하는 부모로선 “취직 안해도 좋으니 제발 좀 나가 놀아라”는 소리가 터져나올 지경일 것이다.

(오태진·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