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왕윤에게 보검을 얻어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조조는 도망치는 도중에 현령을 지내던 진궁(陳宮)을 만나는데 진궁은 조조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충의에 감복하여 벼슬을 버리고 그를 따라나선다.

진궁과 조조, 함께 길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조조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呂伯奢)의 집에 들른다. 여백사는 두 사람을 자신의 집에 묵도록 하고 좋은 술을 구해오기 위해 집을 나선다. 조조는 "우리가 친부모 자식 간은 아니어서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된다"면서 발소리를 죽여 뒤꼍으로 가는데 칼 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묶어서 죽이는 게 어떨까?"

조조는 그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 진궁과 함께 칼을 휘둘러 여백사의 여덟 식구를 모조리 죽이고 만다. 그런데 부엌 한구석을 보니 돼지 한 마리가 꽁꽁 묶여 버둥거리고 있다(그런데 이 돼지, 벙어리였나, 아니면 주둥이까지 묶였었나?). 그 돼지를 잡아 그들을 대접하려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급히 말을 몰아서 그곳을 떠났는데 도중에 나귀에 술병을 매달고 돌아오는 여백사와 마주친다. 왜 벌써 떠나느냐는 여백사의 물음에 조조는 죄지은 몸이라 오래 머물 수가 없다고 얼버무리고 몇 걸음을 더 가다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단칼에 여백사를 베어 죽인다. 진궁이 크게 놀라 조조를 나무라자 조조는 “백사가 자기 집에 돌아가 식구들이 몰살당한 것을 보면 관가에 알릴 것”이라고 변명한다.

이어지는 말이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을 버리더라도 천하 사람이 나를 저버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궁은 그날 밤 잠이 든 조조를 죽이려 하다가 “이까짓 위인을 죽여 보아야 의로운 일이 아니며 나만 살인자가 될 뿐이다”라고 하면서 조조를 떠난다.

내가 삼국지에서 이 대목을 읽은 때는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다. 돼지를 잡으려다 손님을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를 받는 에피소드는 그 전에도 이미 다른 동화나 옛날 이야기에서 여러 번 보거나 들었던 것이었다. 누가 표절했느냐, 모방했느냐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그만큼 연극적이며 드라마로서의 완성도가 높다는 게 중요했다.

나 역시 학교에 가서는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인 척하고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읽었던 삼국지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라는(아주 잠깐이지만 그가 길씨 집안의 이름이 좀 긴 사람인 줄 착각했더랬다) 일본인 작가의 번역본(을 또 번역한 것)이었다.

그의 삼국지가 기름이 잘잘 흐르는 밥에 이국적인 산해진미가 차려진 풍성한 밥상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가 상당한 수준의 한문 실력과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시대와 사회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전에는 없는 대목을 끼워넣기까지 하면서 허구로서의, 정서적인 공감대를 자아내는 매체로서의 '소설적 농도'를 극적으로 높여놓았기 때문이었다.
어떻든 내가 두 번째 읽은 삼국지는 소설이 아닌 만화가 고우영의 삼국지였다.

거기서 새롭게 발견한 게 바로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을 버리더라도 천하 사람이 나를 저버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시대를 막론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성을 표상하는 명구절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울고 또 울고 상습적으로 울어 마침내 인간미를 철철 흘리게 되는 유비 같은 영웅을 ‘쪼다’로 그려놓고 깔깔 잘 웃고 간사하되 미워할 수만은 없는 조조, 사실은 우리가 하고 싶지만 차마 못하는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귀여운 사나이’ 조조를 주밀하게 그려낸 고우영은 이미 그때 젊은 거장이었다.

사실 이 장면은 잔혹하다. 어처구니없다. 그리하여 인간적이고 그러므로 삼국지가 영원한 현재성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닌지.

성석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