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양길승 제1부속실장 파문과 관련, 4일 새벽 이원호 청주 K 나이트클럽 사장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청주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a href=mailto:jhjun@chosun.com>전재홍기자<

청와대 양길승(梁吉承) 제1부속실장이 지난 6월 28일 청주에서 술대접을 받고 호텔 스위트룸에서 숙박한 ‘향응 사건’이, 이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은 ‘기획성 폭로’ 사건과 뒤엉키면서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특히 양 실장에 대한 향응 부분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재조사하고, ‘몰카 사건’에 대해선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향응 사건’은 뒷전으로 밀리는 양상이다.

◆ 사건의 본질은 ‘몰카’가 아닌 ‘향응’ 여부

‘양길승 파문’은 두 사건이 혼재돼 있으나, 사건의 출발점과 본질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권부의 핵심인사인 양 실장의 향응 사건이다.

양 실장이 철도파업으로 정부에 비상이 걸렸던 6월 28일 민주당 충북도 부지부장 오원배씨의 초청으로 청주를 방문, 청주 최대의 나이트클럽에서 술대접을 받고 호텔에서 묵은 것이 향응이냐 아니냐는 것이 사건의 본안이다.

특히 이 술자리에 나이트클럽과 양 실장이 투숙한 호텔의 사장이면서, 조세포탈 및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내사를 받고 있는 이모씨가 합석한 것이 주목거리다. 이씨가 사건수사 무마를 위해 양 실장에게 접근, 향응을 제공하고 청탁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 향응 사건 어떻게 알려졌나

양 실장의 ‘청주 술자리’가 공개된 것은 지난 7월 8일 지역 시사주간지 충청리뷰의 인터넷판인 ‘오마이충북’이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청주 극비 방문’이란 기사를 온라인상에 띄우면서부터다.

당시 양 실장은 오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 충북지역 ‘경선동지회’ 회원 50여명과 저녁을 먹은 뒤, 이씨가 운영하는 키스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먹고 리호관광호텔에서 묵었다. 술값 41만3000원과 절반으로 깎은 방값 7만원은 오씨가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오마이충북은 향응 문제나 이씨의 청탁가능성 등에 대한 언급 없이 ‘지역 정가의 관심을 끄는 정치적 사건’ 정도로 다뤘다. 그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조사했으나 “술자리가 부적절했다”는 판단만 내리고, 양 실장을 구두경고하는 선에서 조용히 마무리했다. 문희상 비서실장도 이 사건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징계위를 따로 열지도 않아, ‘감싸기’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이렇게 묻힐 뻔했던 사건은 한국일보가 7월 31일자 신문에 ‘양 실장이 향응을 받았으며, 나이트클럽 소유주인 이씨의 수사무마 청탁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보도 직후 노 대통령의 재조사 지시가 떨어졌고, 민정수석실은 향응 부분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일 당초 술자리 참석자가 양 실장과 오씨, 김정길 민주당 충북도 부지부장 등 4명뿐이었다고 한 참석자들 주장과 달리,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창생인 정화삼씨 등 3명이 더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의혹이 증폭됐다. 노 대통령 친구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참석자들은 왜 그의 동석사실을 숨겼는지, 정씨와 양 실장은 어떤 관계인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 SBS 비디오테이프 공개로 ‘몰카사건’으로 번져

이 사건은 한국일보가 보도를 한 지난달 31일 저녁, SBS가 8시뉴스에서 양 실장이 나이트클럽을 나서는 장면 등을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방영하면서, 누가 무슨 목적으로 몰래카메라로 양 실장의 행적을 촬영했느냐로 초점이 옮겨갔다.

이후 몰카 '기획폭로자'가 누구냐를 두고, 민주당 충북도지부 내부 알력설 나이트클럽 주인 이씨와 경쟁업소의 이권다툼설 양 실장에 대한 정치적 공격설 등이 나돌면서 세간의 관심은 '몰카'에 집중됐다.
이 상황에서 양 실장은 2일 법무부에 수사를 의뢰, 검찰은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향응 파문에 곤혹스러워하던 청와대로선 관심의 초점을 바꿀 수 있는 소재였다.

청주지검은 사건을 배당받은 당일인 2일, 토요일 오후 업무가 끝난 시간임에도 양 실장을 불러 조사한 뒤 관련자들을 잇달아 소환하는 등 ‘속전속결’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양 실장 향응 파문으로 청와대의 도덕성이 큰 상처를 받고 있고 각종 음모론이 나도는 국면을 장기화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듯하다. 야당 등에서 ‘수사무마 로비설 등으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의 역공’이란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양 실장은 사건이 불거진 직후 사표를 냈으나, 노 대통령은 2일 국정토론회에서 “후속기사 두려워 아랫사람 목 자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재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지만, 언론의 문제제기에 밀려 사표수리는 않겠다는 뜻도 담긴 것 같다.

◆ 밝혀져야 할 의문점들

이 사건과 관련해 밝혀져야 할 부분은, 당사자들은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양 실장이 조세포탈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내사를 받고 있는 이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는지와 이씨로부터 사건무마 청탁을 받았는지 여부이다. 동시에 야당 등이 주장하는 ‘금품제공설’의 진위도 밝혀내야 한다.

또 7명의 술자리 주대가 정말 41만원밖에 안 됐는지도 의문이다. 누가 무슨 의도로 양 실장을 미행 추적하며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고 폭로했는지는 검찰 수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