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는 지난달 27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전 ‘보야르 원정대’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중세 요새 보야르 섬에서 연예인들이 보물을 타기 위해 각종 게임을 하며 승자를 가리는 내용으로 몇년 전 프랑스 TV가 제작한 인기 프로그램을 제목부터 틀까지 고스란히 빌려온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총 13억원의 제작비에 호화 캐스팅, 프랑스 프로덕션과 공동 제작으로 화제를 뿌렸다. 한쪽에서 “IMF 외화위기보다 더 어려운 때 웬 외화 낭비냐”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평범한 시청자들은 TV 앞에서 화려한 볼거리를 탐욕스럽게 원한다. 그러나 보야르 원정대의 제작기간은 10박11일이다. 13편을 만들었다면 거의 하루에 한 편 이상을 돌린 초강행군인 셈이다. 기적 같은 스케줄과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진행 아래 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일요일 아침, “야…, 재밌는 거 한다”며 아이들을 TV 앞에 불러 앉힌 가장을 우습게 만든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보야르 섬의 주인 노릇을 해냈어야 할 MC 남희석와 이효리는 끝까지 ‘주객전도’에 실패했다. 패널들도 원정대가 아니라 테마파크에 놀러온 듯했다. 일부 여성 참가자의 옷차림이나 태도 역시 접객업소의 여성과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보야르 섬과는 ‘코드’도 ‘연식’도 맞지 않았다.
보야르 원정대는 프랑스 TV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라고 TV 오락 프로그램에 심오한 철학이 담겼을 리 없다. 세상 남자가 다 똑같듯 세상의 TV 프로그램도 다 똑같다. 그렇지만 그래도 프랑스판은 ‘게임의 법칙’에 충실했다. 우선 두 남녀 MC가 제대로 노를 저을 줄 아는 사공이었다. 남성은 ‘닻(앵커)’ 노릇을 했고, 여성은 침착하게 ‘구조대 요원’처럼 요령을 알려주고 때로는 아이디어도 제공했다. 여성 출연자들도 제대로 된 운동복을 입고 ‘강한 여성상’을 보여줬지 한국판처럼 교태와 아양과 역겨운 화장품 냄새를 피우진 않았다. 한국판 보야르 원정대를 보며 웅지를 품고 역경을 이길 용기까지야 얻을 수 없겠다. 그래도 ‘서바이벌게임’의 짜릿한 재미와 얄팍한 감동은 기본이 아닌가?
그러나 이 보야르 원정대에는 ‘기본’이 없었다. 제작진은 말할 것이다. “최선을 다했노라”고. 기적 같은 제작비와 제작기간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왜냐면 보야르 원정대는 철저히 ‘카피’이자 ‘짝퉁’이기 때문이다. 그 보야르, 그 게임, 그 실패 그리고 그 성공이 모조리 수백 편의 프로그램으로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것이다. 창작의 고통 없이 한국말로 가사만 나달나달한 번안가요가 바로 한국판 ‘보야르 원정대’였다.
(방송인 전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