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다. 그리고 쓸쓸하다. 그렇다.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14일 개봉)은 텔레비전 홈드라마의 반대말이고, 안티-디즈니의 전위이며, 비숍이 작곡한 ‘즐거운 나의 집’의 대척점이다. 이 영화는 솔직하다 못해 뻔뻔한 태도로 속화된 현대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이란 성지(聖地)의 앞마당에 흙발을 들이민다.
‘바람난 가족’은 2003년의 진정한 문제작이다. 변호사인 아들 영작(황정민)은 사진작가인 20대 여성과 불륜 관계를 지속하고, 며느리 호정(문소리)은 옆집 열일곱 살 고교생과 연애를 시작한다. 술로 인생을 날린 아버지(김인문)가 간암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동안 예순을 넘긴 어머니(윤여정)는 초등학교 시절 동창과 바람을 피운다.
불륜 관계를 다룬 작품일수록 결국 가족 속으로 회귀하는 보수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아내가 남편의 애인 머리채를 휘어잡는 장면이나, 남편이 아내의 정부에게 칼부림하는 장면 없이 ‘쿨하게’ 끝난다.
분명 이 영화는 ‘부도덕’하다. 아마도 ‘바람난 가족’은 미혼 관객은 혼란스럽게 하고 기혼 관객은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임상수 감독은 모두가 인정하는 도덕률을 일부러 외면하고 짐짓 위악적인 태도로 한 가족의 해체를 그려냄으로써 황량한 폐허 위에서 가족의 가치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되묻고 싶어한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눈물’을 통해 도발적인 작품세계를 견지해온 충무로의 ‘문제적 감독’ 임상수는 이 비범한 작품에서 영화가 ‘거울’이 아니라 ‘망치’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극중 종종 물구나무서기를 하던 호정과 같은 시선으로.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근거리에서 인물 속으로 파고들기보다는 좀 떨어진 곳에서 시종 냉정하게 관찰한다. 카메라는 잠시라도 시선을 옮기면 인물의 내면을 놓칠 수도 있다는 듯이, 많은 시퀀스에서 장면을 나누지 않은 채 끈질기게 지켜본다. 현란한 원색에서 한 꺼풀 벗겨낸 듯 빛바랜 영화의 색조는 온갖 가치로 덧칠된 ‘가족 이데올로기’의 외겹까지 벗겨내려는 듯하다.
차갑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한 상황 속으로 몰고 가는 이 영화의 블랙 유머가 자주 웃음을 터뜨리게 하지만, 결국 관객은 가슴 서늘한 순간을 목도하고야 만다. 그것은 영화 속 섹스는 언제나 죽음의 이미지와 얼기설기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배우들은 쉽잖은 연기를 한결같이 잘 소화해냈다. 문소리는 ‘박하사탕’에서 충분히 인상적이었지만 그 배역은 정물(靜物)과도 같은 구원의 여인상이었고, ‘오아시스’에서 소름끼칠 만한 열연을 했지만 그 역할은 어차피 전무(全無) 아니면 전부를 가져갈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다. 이제 그는 과감하고 당당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연기를 함으로써 ‘바람난 가족’을 영화배우로서 진정한 출발점으로 삼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로드무비’와 ‘YMCA 야구단’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던 황정민은 성실한 연기로 그에 대한 충무로의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베테랑 김인문과 윤여정의 빼어난 맞춤연기와 봉태규, 백정림의 신선한 연기도 극과 잘 어울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호정과 영작의 일이 극의 중심 이야기와 잘 섞이지 못하고, 절묘하게 빚어낸 영화의 분위기를 스스로 역행하는 장면이 없지 않지만, ‘바람난 가족’은 분명 ‘살인의 추억’과 함께 올해 충무로가 거둔 가장 빛나는 수확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영화 속 가장 충격적인 순간을 포함한 참극이 지난 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호정은 다친 왼손을 깁스한 채 마침내 옆집 고교생과 관계를 갖는다. 쾌락의 절정에서 교성을 지르던 그는 곧이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한다.
마구 떨던 몸통으로 대변되는 쾌락과 감싸맨 왼손으로 상징되는 고통 중 어느 것이 사실이었을까. 혹시 둘 모두가 진실이었던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것은 쾌락과 고통 사이에서 초점 없이 방황하는, 생생해서 더욱 슬픈 육체니까. 그리고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결국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