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미군에 의해 사살된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 우다이(39)와 쿠사이(37)는 서로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면서, 아버지의 정적들을 경쟁적으로 제거했던 후세인 정권의 양대 기둥이었다.
미군측은 후세인의 군조직을 장악했던 차남 쿠사이가 그동안 이라크 내에서 발생한 미군에 대한 게릴라전을 배후에서 지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우다이는 이라크전쟁 기간에 미군에 대한 저항을 주도했던 페다인 민병대를 지휘한 인물이다. 때문에 두 아들의 죽음 이후 후세인 잔당들에 의한 게릴라 공격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미군측은 예상하고 있다.

우다이는 후세인의 5남매 중 첫째이면서도, 권력 서열은 차남 쿠사이보다 뒤처져 ‘넘버 3’에 머물렀던 인물. 후세인의 유력한 후계자였던 그는 문란한 사생활과 지나친 기행으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났다.

특히 1988년에는 후세인이 아끼던 경호원을 살해, 스위스로 쫓겨나기도 했다.
우다이는 후세인 정권하에서는 언론기관들을 소유하고, 이라크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과 축구협회장 등도 맡았다.

1996년 포르쉐 승용차를 몰고 바그다드 시내를 지나다 저격당해 척추를 다쳤다. 그는 살인·고문·마약을 즐기고 길거리에서 여성을 납치한 뒤 성폭행하는 방탕한 생활로 악명이 높아, ‘늑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자신의 저택에 사자 등 맹수를 기르는 동물원을 짓고, 롤스로이스 20대 등 100여대의 고급승용차를 보유했다.

차남 쿠사이는 형 우다이를 제치고 이라크의 병권을 차지하는 등 후세인의 후계자 지위를 굳힌 인물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아버지 후세인 못지않게 잔인한 면모를 갖춰 ‘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달막한 체구의 그는 이라크 구정권의 비밀경찰과 공화국 수비대, 특별 공화국 수비대를 모두 맡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라크전에서는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와 수도 바그다드 등 핵심지역의 수비와 후세인 개인 경호 임무를 맡았다. 때문에 그의 사망으로 인해 미군측이 사담 후세인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제기된다. 쿠사이는 잔인한 처형과 고문으로 악명 높은 이라크의 정치범 수용소의 관리도 맡았다.

쿠사이는 걸프전 당시까지는 별다른 역할이 없었으나, 이후 주도적으로 후세인 반대파를 탄압하고 숙청하면서 국내 갈등을 해결하는 등 능력을 과시하면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강의 물길을 돌리는 대규모 공사를 벌여, 시아파들의 집단 거주지이자 은신처였던 이라크 남부 늪지를 파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