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사진을 놓고 앉은 오동환교장. 1100여명의 학생들을 모두 만나 상담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물어봤죠. 내가 누구니? “

“교장선생님이요.”

“아니, 좀 더 자세히. 내가 누구 교장이니?”

“…어은중학교 교장이요.”

“에이, 그건 50점이다. 나는 네 교장이야. 너때문에 여기 와 있는 거야.네가 없으면 교장자리도 없잖아? 너를 도우려 여기 있으니까 나는 ‘너의 교장’이야.”

“…?!”

대전 어은중학교의 오동환(吳東煥·61)교장은 제자들에게 ‘나는 너의 교장이다’라고 말한다. 그때 무언가 묵직하고 뜨거운 것이 기자의 속에서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오 교장은 마치 교육현장에 목말라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지난해 우리 학생들을 한번씩 다 만나 상담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못미더워하자 오교장은 갑자기 서랍에서 학생명단을 꺼내 보여줬다. 그 종이에는 1100여명의 전교생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올라있었고 오교장의 간단한 메모도 딸려 있다.
오교장은 매일 서너명씩 학생들을 불러 상담을 해준다고 말했다.

워낙 격의없이 지내다보니 교장으로서는 정말 특이하게 학생들에게서 팬레터를 다 받는다고 했다. 정말 학생들이 편지를 보내느냐고 물었다.

오교장은 서랍을 뒤져서 금방 한 웅쿰의 편지를 되는 대로 꺼내놓았다. 몇개 편지를 읽어보았다. 어떤 학생은 ‘내년이 정년이신데…그만 두시면 어떡하느냐’며 아쉬워하는 편지도 보냈다. 고맙다는 편지에서 건강을 조심하라는 내용등 간단한 편지도 있었고 긴 편지도 있었다.

교생실습을 하고 간 대학졸업생이 보낸 편지도 눈에 띄었다. 손으로 직접 2장이나 빽빽이 써 내려간 편지는 얼핏 읽어보니 ‘아직 취직을 못해서 죄송하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세상에, 자기 담임도 아닌 교장선생님에게 중학생들이 저렇게 편지를 보낼 줄이야. 학생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우편으로 보내거나, 교장실을 지나가다가 그냥 들어와서 책상에 슬쩍 편지를 올려놓는다고 했다.

'내년에 정년퇴임하신다고요? 안계시면 저는 어떻게 살라고요'라고 쓴 한 학생의 편지.

“애들이 화장실을 가려다가 급하니까 교장실로 들어와선 ‘선생님 화장지요’라고 해요. 그래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주면 급하게 가져가다가 화장지 두루마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떼구르르 구르기도 합니다”

정말 잘 상상이 안됐다. 교장선생님 방에 들러 화장지를 얻어가다니….

오 교장이 어은중학교에 지난해 3월에 부임해왔으니까 이제 겨우 1년 3개월이다. 오교장은 우선 어머니들을 만났다고 했다. 학교 급식 검수를 하시라고 아침마다 너댓명씩 어머니들을 불러 학생들이 먹을 음식 재료를 감시하게 했다. 재료는 항상 좋은 것만 쓴다고 한다. 수입 밀보다 몇배는 비싼 우리 밀에, 되도록이면 농약을 쓰지 않는 채소를 공급하게 하고, 소금도 몇 배 비싼 죽염만 쓴다.

등교하기전 음식재료를 검사한 어머니들을 오교장은 전부 교장실로 불러 상담했다. 학생들의 수업태도, 어머니의 의견, 그러면서 절대로 아이들을 칭찬할 것을 요구했다.

어머니를 통해 자녀를 파악하고 나면 점심시간이 지나 그 아이를 불러서 또 이야기를 나누며 다독거리는 것이 오교장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다.

한 학생은 “부모가 내게 해준게 무엇이냐”고 반항하는 소리를 들었다. 오교장은 알아듣게 타일렀다. ‘네가 태어나서 네 손으로 탯줄을 끊었느냐, 네가 상점에 가서 기저귀를 사 입었느냐, 우유와 이유식은 누가 사 줬느냐…’

그러면서 ‘집에 가거든 부모님 주무시는 방바닥이 따듯한지 손바닥을 대보면서 안녕히 주무시라고 여쭌 뒤 뒤를 보이지 말고 나오라. 다음날 아침에도 가서 잘 주무셨는지 문안인사를 드려라…’고 일렀다.

오교장은 이 학생을 세번씩 불러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확인했다.

얼마뒤 한 어머니가 교장실로 전화를 해서 “우리 아이가 글쎄…”라고 이야기하다가 흐느끼는 바람에 대화를 다 나누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세가지 원칙.
된사람, 든사람, 난사람이다.
된사람은 인격적으로 수양이 된 사람
든사람은 실력있는 사람
난사람은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그의 눈에는 어은중학교 학생들은 어느 누구 한명 빼놓지 않고 잘나고 귀하고 신기하다.
학생이 신기하다니?

“여기 오기전에 정신지체아학교에 있었어요. 그들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뿐이고,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 쟤들이 어떻게 자립하나 항상 고민했죠.”

'아버지 모임' 강사로 학교를 방문한 노정구박사(오른쪽)와 함께 한 오교장.

그래서 단순작업을 숙달시키는 직업교육을 시켜 빵공장으로 보내기도 했다.

교육청과 연구원에서 일하다 오랫만에 교육일선에 돌아온 오교장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자로서의 마지막에 온 힘을 쏟아부으려고 한 것 같았다. 60을 내일모레 앞둔 나이에 좀 더 나은 교육을 시키려고 정신지체교사자격증도 땄고, 교육감을 설득해 전문대학과정도 설치해놓았다.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고 홍성표 대전시교육감이 ‘다른 곳으로 보내주마’ 할때도 ‘나는 여기가 좋다’고 거절했다. 지난해 희망자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허락해 발령받은 곳이 어은중학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교장이 자기 학생들을 "누구 한 명 빼놓지 않고 천재요, 이나라 미래 지도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도 가식이 없어 보였다.
"학생들에게 세계로 뻗어나가고, 이 나라를 위해 훌륭한 지도자가 돼라고 이야기하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주먹을 불끈 쥐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

하지만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성장할수록 아버지와는 대화가 끊기는 것을 발견했다. 가만히 보니 학부모회를 하면 어머니만 모이는 것도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교장은 가정통신문을 보내 ‘학교 일에 아버지들도 나서자. 아버지 모임을 하려고 하니 참석하시겠느냐’고 의견을 물었을 때 예상보다 훨씬 많은 80여명의 아버지들이 분연히 일어났다.

첫모임을 가진 21일 오후, 어은중학교 강당에 먼저 초청강사가 올라왔다. 연구소에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자신을 싫어하는 딸을 발견하고 놀라서 인생의 진로를 수정한 노정구박사이다. 55세되던 해 노박사는 화학연구원 안전성연구센터장을 그만두고 가정이 뭔지, 아버지의 역할이 뭔지를 뒤늦게 공부했다. 미국서 공부하는 딸을 위해 3년동안 뒷바라지하며 호미로 막을 것을 포크레인으로 막으면서, 자신의 말로는 철없이 결혼했다가 뒤늦게 철이 난 노박사는 ‘아버지 학교’를 만들어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주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날 노박사의 강연요지는 ‘직장의 성공이 가정의 실패를 보상하지 못한다’였다.

이날 사회를 본 학부형인 임대영교수(배재대)는 “한국상황에서 사막과도 같은 고교3학년을 잘 보내려면 중학생때 준비를 잘해야 한다”면서 “중학교때 우리 아들 딸들이 한번 실패해 볼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일어나는 경험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교장은 많은 아버지들이 온 것에 흥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너무 좋다, 기쁘다고 되뇌이던 오교장은 “이제 학교도 어머니의 날개에 아버지의 날개를 달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