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함께 모인 다섯 식구. 맨 왼쪽이 한나, 뒤쪽이 에스더이고, 가운데 장난치고 있는 네 살배기 개구쟁이가“눈에 넣어도 안 아픈 늦둥이 아들”유진이다. <a href=mailto:krchung@chosun.com>/정경렬기자 <

인요한(44·미국명 린튼 존·연세대 세브란스 외국인 진료소장),
이지나(41·이지나 치과의원 원장)씨 부부가 세 아이와 함께 사는 서울
연희동 집은 참 검박했다. 10년은 족히 돼보이는 장식장, 어른용 의자를
재활용해 만든 어린이 책상과 의자, 화려하지 않은 식기와 화병. 집은
외국인학교의 관사를 빌려쓰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의 성격 역시 집안 분위기처럼 소탈했다. "음매애~" 하며 소 울음
소리를 내는 핸드폰을 흔들어대며 "제가 촌놈이라서…"하며 웃는 인씨.
그의 아내는 "한국 남자보다 더 한국적인 남편에게서 갓김치 담그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파란 눈의 미국 남자와 까만 머리의 한국 여자, 그리고 그들을 반반씩
닮은 세 자녀는 유창한 한국어, 유창한 영어를 동시에 구사하며 두
종류의 문화를 상황에 맞게 적당히 버무리고 응용하며 사는 '인터내셔널
패밀리'다.

이 집안 역사가 그렇다. 인씨의 외증조 할아버지 유진 벨에 이어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 아버지 휴 린튼, 그리고 자신의 6남매로 이어지는
한국에서의 선교 역사가 자그마치 108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사투리는 물론 생활습관을 온몸으로 익히며 자란 인씨는 급한 성질, 술과
사람 좋아하는 기질 등 어느 모로 보나 전형적인 한국 남자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18살 나이에 21살 대학생과 결혼한 이씨는
여러 면에서 남편과는 상반된다. 개방적인 부모 밑에서 남매로 단출하게
자란 그는 혼자 책 읽고 영화 보는 걸 즐기는 서울 토박이. 그렇다고
수줍음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시민군과 외신기자들을 통역해준 죄로
강제 출국 당하게 된 남자를 구하기 위해 교제한 지 5개월만에 청혼을
받아들인 당찬 여자다.

이 부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랑,
그리고 올바른 권위다. 작게는 자식 교육이 그렇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열 살 이전엔 매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부부의 원칙. 생후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아이의 요구나 행동에 예스(Yes)와 노(No)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믿는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가장의 권위를
세워줘야 집안이 화목하고 질서가 선다"고 말하는 이씨는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면 아이들을 모두 현관으로 불러모아 아빠를 포옹과 키스로
맞이하게 가르친다.

대신 190㎝에 달하는 인씨의 커다란 몸집속엔 유머와 사랑이 가득하다.
아무리 바빠도 목요일 하루는 아내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휴진을 하고
엄마에게 혼이 나 눈물범벅인 아이들을 바다처럼 품어주는 아버지. 둘째
형 스티브 린튼씨와 8년째 북한 의료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을 함께 북한에 데려간다. "우리 부모에게
물려받은 최고의 유산인 사랑은 손과 발로 행하는 것이지 성경속 구절로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요."

이들 부부의 요즘 고민은 고등학교에 올라간 맏딸 한나(15)다. "나는
혼혈"이란 말을 서슴지 않는 한나는 "김치 없이는 못살지만 나의
또다른 절반인 미국을 알기 위해 대학만큼은 미국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한나뿐 아니라 에스더(13)와 유진(3) 모두 언젠가는 겪어야 할
통과의례. 하지만 심각하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게 부부의
결론이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제3의 문화에서 살아갈
아이들입니다. 그들 역시 또다른 나라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고, 그로
인해 삶은 더욱 풍부해질거라고 믿어요. 토양만 잘 닦아주면 아이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간섭하지 않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