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는데 연기가 자욱했어요.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와 겨우 살아나긴 했지만 형들은 못 빠져 나왔어요.』

충남 천안초등학교 화재 참사에서 그나마 16명이 생명을 건진 것은 비록 어리지만 형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밑거름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상당한 어린이들이 점차 회복되면서 후배를 구하고 의로운 죽음을 택한 살신성인이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주위를 또 다시 눈물바다로 만들고 있다.

지난 26일 밤 11시 15분쯤 천안시 성황동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매일 계속되는 고된 훈련에 이어 이날은 시합까지 마치고 온 뒤여서 24명 모두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부엌 한켠에선 어린 생명을 빼앗을 채비를 마친 사악한 불길이 선수들이 곤하게 자는 방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 때 매케한 연기에 이건우(13·6학년)군과 김바울(13·6학년)군이 먼저 눈을 떴다.

『야! 불났어. 나가야 돼. 빨리 일어나!』

이미 불길이 막 방을 넘어온 급박한 순간이었다. 이군 등 6학년 학생들은 급한 마음에 깊은 잠에 빠진 후배들을 마구 흔들었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자, 심지어 발로 차거나 뺨까지 때렸다. 그래선지 다행히 몇몇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곧 불길에 놀라 숙소를 뛰쳐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욱한 독가스와 시뻘건 불길에 파묻혔을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실제 이날 사고로 숨진 6학년생은 이장원, 이건우, 주상혁, 김바울군 등 4명으로 전체 사망자 8명 가운데 절반에 이른다. 초를 다투는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 아우들을 깨워 대피시키다 자신들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참변을 당한 것이었다.

순천향병원에 입원중인 조덕근, 엄태훈, 유재석(5학년)군 등 3명은 『시커먼 연기 속에서 형들이 깨우며 먼저 나가라고 소리쳤다』며 고마워했다. 또 단국대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나종우(5학년)군은 『살아난 안준(6학년) 형이 깨워 살아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건우군의 아버지 이근태(43)씨는 『건우가 4살 때 처음 신었던 축구화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인데 너무 가슴 아프다』며 『하지만 의젓하게 맏형 노릇을 하고 갔으니 저 세상에선 태극마크를 다는 꿈을 꼭 이룰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바울군의 아버지인 유가족 대표 김창호(40)씨는 『부상당한 아이들로부터 관련 증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며 『아이들의 고귀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형식(충남도교육청 부교육감) 사고대책본부장은 『고학년 어린이들의 고귀한 정신을 교과서에 게재해달라는 유족들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