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소설가뿐만 아니라 발랄한 만화 시나리오 작가의 모습도 함께 가지고 있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엑시트 ’는 그가 고등학생 때부터 기획했던 첫만화 작품이다.


독서 애호가들을 위한 첫 번째 퀴즈. 지난 한 해 MBC '느낌표'의
'지원 사격'을 받지 않은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정답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42)의 '뇌'(전2권·열린책들
刊)이다. 너무 쉬운가? 그렇다면 베르베르의 팬들을 위한 두 번째 퀴즈.
베르베르가 소설가 이외에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은? 답은 '만화
시나리오 작가'다.

그가 25년 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획했던 첫 번째 만화가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소개됐다. 자신이 글을 쓰고, 알랭 무니에르와 에릭
퓌에크가 나눠 그린 만화 '엑시트(Exit·애니북스 刊)이다. '개미'와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 과학소설로 이름난 이 작가가
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발랄한 작가의 '만화 사랑'은 그 뿌리가 깊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탐독했고 만화 시나리오를 습작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직접 만화를 그려 '유포리'라는 만화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던 것.
120여 회의 개작을 거쳐 발표한 뒤 이 작가의 이름을 전세계인에게
친숙하게 만든 소설 '개미'도 처음에는 만화 시나리오로 쓰여졌다고
한다.

'엑시트'는 그가 만화 신문 '유포리'를 만들 때 기획했던 작품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파문을 일으켰던 인터넷 자살 사이트를 소재로 한
만화로, 비루한 삶 속에서 자살을 탈출구(Exit)로 떠올리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좌절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젊은데다가 미모까지 갖춘 컴퓨터게임 잡지 여기자 아망딘은 어느 날
분연히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떠난다. 자기 잡지의 광고주중 하나가 만든
새 게임 '중세 전투'에 대해 "형편 없다"는 리뷰 기사를 쓰려 하자
데스크가 "우리 밥줄 끊을 일 있느냐"며 "다시 쓰라"고 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아파트에 돌아오자 그녀의 침대에선 자신의
애인이 엉뚱한 여인과 정사를 벌이고 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한 아망딘은 거리에서 낯선 표지판을 발견한다. "사는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당신을 도와드립니다. SOS 우울"이라고 쓰여진 그
표지판의 한 쪽 구석에는 인터넷사이트 주소 하나가 적혀 있다. 접속한
아망딘에게 이런 글귀가 유혹한다. "삶에 실패하셨읍니까? 그럼,
죽음에는 성공하십시오!"

'제 9의 예술'이라는 상찬을 들을 정도로 화려하지만, 취향이 다른
우리 독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프랑스 만화의
울타리를 '엑시트'는 상당 부분 뛰어 넘고 있다. 치밀한 구성과
반전(反轉)을 과학적 지식과 함께 감칠맛 있게 버무리는 이 작가 특유의
시나리오가 이번 만화에서도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탈주(脫走), 액션, 서스펜스 등 대중적 흥미유발 장치도 144쪽의 칼라
그림 내내 빼곡하다. 그러면, 마지막 퀴즈. 우리에겐 당혹스러울수 있는
소재의 만화 '엑시트'는 자살을 부추기는 작품일까? 답은 책을 통해
확인할 것. 힌트는 베르베르의 만화적 상상력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