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 미로 속에 갇힌 사람들의 탈출기를 그린 영화 ‘큐브2 ’.


8명의 사람들이 6면에 창이 나 있는 정육면체 모양의 방에서 깨어난다.
정신과 의사와 사립 탐정, 엔지니어, 시각 장애인, 변호사, 게임
프로그래머, 치매에 걸린 노인. 이들은 자신들이 왜 그 곳에 있는지
영문을 알지 못한다. 출구를 찾아 창문을 넘어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또
다른 방. 누군가 벽에 남긴 '60659'라는 숫자를 발견하지만, 그 의미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큐브2(Hypercube)'는 1999년 개봉한 '큐브'에서 한 차원 더
복잡해진 속편이다. 똑같은 모양의 방이 연속된 거대한 정육면체 속에
갇힌다는 설정은 같지만, 이 곳이 서로 다른 시간대가 교차하는 4차원
공간이라는 점에서 탈출은 한결 어려워진다. 계속되는 방 뿐 아니라,
반복재생되는 이들 각자의 존재가 미로를 형성하는 것이다.

'큐브'가 아이디어의 독창성으로 성공을 거뒀다면, '큐브2'의
승부수는 '실험적인 영상'이다. 촬영 감독 출신 안드레이 세큘라
감독은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평소 좋아하던 촬영 기법들을 거침없이
펼쳐냈다. 때로는 벽면에서, 때로는 천정에서 정면으로 찍은 화면은
관객마저 미로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좁은 공간에서 정신없이
흔들어대는 카메라는 불안감을 가중시키다 못해 멀미까지 일으킨다.

하지만 스토리의 힘보다 감각적인 영상에만 치중하다 보니, 후반부에선
뮤직 비디오나 컴퓨터 게임을 보는 듯한 비현실감이 초반의 스릴을
상쇄해버린다. 다양한 인간들이 일으키는 갈등도 전편보다도 훨씬
과장되게 표현돼 공감대를 벗어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비슷한
허무주의적 결말은, 충격을 주기보단 오히려 맥빠지게 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