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Einstein)은 재미있고 똑똑한 '진짜 천재'이자 '과학의
산타 클로스'였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최신호에서
"아인슈타인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사고 발전 과정과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986년에 시작된 본격적인 아인슈타인 연구작업인 '아인슈타인 문서
프로젝트(EPP)'는 총 1만4000종의 문서를 담은 책 25권을 발간할
예정이다. US 뉴스는 현재 약 8권까지 발간된 이 작업은 아인슈타인이
재치와 매력은 물론, 사회정의에 대한 문제의식과 용기를 갖춘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또 성자(聖者)와는 거리가
먼 어둡고 신랄하며 반항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다고 US 뉴스는 전했다.
이 작업에 참가한 물리학자 존 스태챌(Stachel)은 "아인슈타인은
이미지와 근육의 감각을 통해서도 사고한 사람"이라며, "그의 발견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밝혔다.
아인슈타인은 "나에게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열정적인 호기심이
있었다"고 자평한 일이 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뒤늦은 출발'
덕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공간과 시간의 문제를
생각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지만, 나는 지적 성장이 늦었기 때문에
커서도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만 계속 의문을 품었다"고 썼다.
1955년 그가 사망한 이후 그가 남긴 문서를 처음 검토했던 과학사학자
제럴드 홀튼(Holton) 하버드대 교수는 "그는 실험을 통해 이론으로
발전시키는 교과서적 방법 대신 머릿속에서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의 여동생 마자의 기록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아인슈타인은
생후 2년 6개월이 될 때까지 말을 못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우유가
너무 뜨겁다"는 표현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의 완벽한 문장에 놀란
부모가 "왜 지금껏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인슈타인은
"이전에는 모든 게 제대로 돼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대학시절에 썼던 편지들에 의하면, 그의 동료학자이자 첫
부인이었던 밀레바 마릭(Maric)과의 결혼에 대해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그는 밀레바가 첫딸을 낳은 뒤인 1903년에야 결혼할 수
있었으나, 부인이 모국 세르비아에서 몰래 낳은 딸이 너무 일찍 죽어
딸을 보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명성이 높아지고 두 아들이 태어났지만, 아내 밀레바가
정신분열증에 걸리면서 그의 가정도 파탄에 이른다. 그는 당시 상황을
"밀레바는 그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삶의 기쁨을 사라지게
한다"고 그의 사촌동생 엘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묘사했다. 그리고
1919년 엘자와 재혼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지성만큼 위대한 박애심을 갖췄다. 그는 같은 유대인
학자들이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이들을 위해
히브루 대학을 건립하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똑같이 경멸한 사회주의자였지만, 미국에서 소수민족의 권리향상을
위해서도 힘썼다.
(워싱턴=姜仁仙특파원 ins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