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달랑 매달린 달력 한 장이 처녀·총각들 조급증을 거드는 쓸쓸한
계절. 짝 없는 '예비 원앙'을 위해 일하는 결혼 정보업체 '커플
매니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잘 되면 술이 석잔, 못 되면 뺨이 세
대'라는데, 현대판 중매 '쟁이'들의 삶과 그들 눈에 비친 2030들의
사랑과 결혼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 정신이 없어요. 월말엔 실적 통계 내랴 바빠지고, 대개 추석
지나면 미혼 분들 마음이 급해져 가입 회원수나 문의 전화가 늘지요.
=1~2년 지나고선 '아, 감이 오는구나' 하고 뿌듯했어요. 3년 지나니까
남녀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결혼정보회사를 통하면 환경·경제력을 선택해 만나기 때문에 외모를
많이 따지죠. 감성적 부분, '필(feel)이 통한다'는 것은 1대1 맞선에서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여기에도 분명 사랑이 있어요. 조건이 바탕이 되지만 감성도 따지고요.
=이상형이 바뀌었어요. 남성은 맞벌이 선호가 뚜렷해요. 몇년 전엔 직업
유무를 안 따졌는데, 이제는 교사·공무원·의사·약사·한의사같은
안정적인 전문직을 좋아해요. "능력 있는 여자 만나면 내조하겠다"는
남자들도 많아요.
=여성들도 남성의 외모와 키를 따져요. 나이가 어릴수록 원빈 같은
꽃미남을 좋아하고. 박신양 한석규 타입을 말하는 여성도 많아요. 다
맞춰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콕 집어 얘기해 주는 게 편해요.
=이상형도 유행을 타요. 월드컵 때 김남일이 최고였고, 황수정은 스캔들
뒤 인기가 폭락했지요.
=만혼(晩婚) 여성은 재혼남도 고려해야 되고, 세태도 그렇게 바뀌었어요.
딸 가진 부모들도 아이 없는 이혼남에 대해 너그러워졌는데, 그럴 경우
경제력을 더 따지죠.
=나이 들수록 눈이 점점 높아지고, 여성 쪽이 더 심해요. 30대 중·후반
남성은 나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지만, 반대로 여성은 프로필에 집착해요.
'아직껏 시집 못 갔는데…' 하는 보상심리나 과시욕이랄까. 고학력이고
직업이 좋을수록 더 하죠.
=황당한 이상형을 말하면 어머니에게도 눈높이를 낮추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잘라 말하죠. 다이어트를 권하든, 화장법·옷차림을 바꾸라고
하든.
=본인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해요. 외모가 안 받쳐 주는데 말수도 없으면
남자건 여자건 두 번 보려고 안 해요. 자기를 꾸미지 않는 여성은 특히
인기가 없죠. 잘 웃고 대화를 잘하는 좋은 인상이 중요하죠.
=사진으로 봤을 때 '마귀할멈' 같은 32세 전문직 여성이 있었어요.
1대1 미팅이 진행이 안 돼 그룹 미팅으로 돌렸는데, 한 남자가
'꽂혀서(푹 빠져서)' 4개월 만에 결혼했죠. 인연이란 게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
=어떤 남성은 머리 숱이 없고 흰 운동화, 투박한 사투리가 거슬렸는데
50번 넘게 선을 봐 실패했어요. 머리 모양을 바꾸게 하고, 통화할 때
최대한 상냥하도록 10개월간 훈련시켰죠. 스타일을 통째 바꾼 그분은
결혼 후 '평생 은인으로 삼겠다'는 이메일을 보내 왔어요.
=같은 여성으로서 내가 봐도 싫은 분이 있었는데, 화장·퍼머 새로 하고
이미지 사진을 다시 찍었어요. 그 사진이 먹혔는지 요즘 두 남자와 교제
중이에요.
=가끔 '양다리'를 권하는 경우도 있어요. 특별히 좋고 싫은 점이
없다고 해서 '다른 남자 분과 비교해 보라'고 권해 비밀리에 진행
중이에요.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가급적 많이 웃으라고 해요.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요.
=예뻐도 안 풀리는 여성이 있는데, '매력'이 문제죠. '내숭'이라고
지레 꺼려 말을 툭툭 내뱉는 경우죠.
=사람(성격)만 좋으면 우리 용어로 '좋은 분'이라고 해요. 그런 분들이
안타깝죠.
=한 남성이 약속 장소에 나왔다 하필 동명이인 여성을 만난 거에요. 얘기
시작했다가 다른 여자임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느낌이 좋아 결혼까지
갔어요.
=결혼 직전 파경한 경우도 있죠. 예단·시부모와의 동거 여부가 주
원인이죠. 남자가 카드 빚이 많은 게 들통나 날 잡고 청첩장 돌렸는데
깨지기도 했고요.
='사'자 붙는 남성의 어머니가 "10억짜리 빌딩을 해와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어요. "혼수를 얼마할 지 대신 알아봐 달라"는
주문도 있어요. '요즘도 그런 게 문제가 되나' 싶죠.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는 여성 집안에서도 싫어해요. 집안을 보고,
출신 학교·고향·고시 기수까지 따지죠. 출세하려면 '연줄'이
중요하다는 거에요.
=사법연수생을 소개하면 판사·검사·변호사 어느 쪽 지망인지, 연수원
성적까지 따져요. 의사도 피부과·성형외과·안과·치과처럼 '돈 되는
곳'을 쳐주죠.
=결혼 후엔 업체를 통해 만난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아요.
=이제는 남녀 모두 적극적이죠. 돌아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끼리
명함 주고 받는 와인 파티를 좋아하고, 게임은 유치하다고 싫어해요.
='좀더 품위 있게 놀고 싶다'는 성향이 세요. 가장무도회를 열어 튀는
의상을 입게 했는데 호응이 컸죠. '잠깐 와서 놀다 간다'는 식은
아니에요. 결혼이 목표니까.
=요즘엔 한 업체에만 매달리지 않고 여러 곳에 가입한 '멀티
플레이어'가 많아요.
=결혼정보업체 전체를 따지면 회원 수 10만명, 시장규모는
500억~600억원으로 추정될 만큼 엄청나지요. 그러나 요즘은 거품이
빠지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실적 위주보단 실속을 차려야 한다는
지적이죠.
=그래서 신문업계 ABC제도처럼 회원 수와 커플 성사 건수, 매출액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습니다.
=회원 중에 정말 탐나는 남자가 있어요.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도 '고객(회원)일 뿐이지' 하는 감정의 한계가 생겨나요.
='따로 만나볼까' 솔깃했었죠. 남자 친구가 없었다면 그랬을 지
몰라요.
=프로필만 좋은 경우 '이건 껍데기지 다가 아니구나' 싶어요. 입사하고
눈이 낮아졌어요.
=커플 매니저는 외모가 괜찮고 목소리도 친절하니까 인터넷에 올린 사진
보고 돌진하는 일도 생기죠.
=저는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했어요. 결혼하려고 회원으로 가입하려다가
'아예 여기서 일하자'는 생각이 들어 입사했죠.
=저도 결혼정보회사가 있는지도 모르고 연애결혼 했어요.
=사석에서도 "좋은 사람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요. 하지만 회원
정보를 비회원에게 공개하면 당장 잘리죠.
=낙천적이고 상대방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재미있어야 하죠. 사람 대하는
일은 피곤할 수밖에 없고, 전문직 회원의 어머니 비위 맞추는 게 특히
힘들어요.
=이 일은 '이미지 컨설팅'이에요. 옷차림·매너도 좋아야 하고
카리스마가 있고 다정하게 조언도 해야 하고. 너무 예쁘면 오히려 부담이
되니까 인상이 편해 야죠.
=일을 하다 보면 반쯤 점쟁이가 되요. 1년에 1000명쯤 만나기 때문에
전화 목소리만 듣고 키·학력을 알아 맞춰요. 사람 보는 눈이 생겼죠.
=직급이 올라가도 관리자가 되지 않고 필드(현장)에서 뛰고 싶어요.
=항상 긴장해야 해야 하고, 대화가 안 되면 커플 매니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박학다식해야 돼요. 신뢰감을 주려고 실제보다 나이를 높여
말하는 동료도 있죠.
=하루 12시간씩 앉아 100통 이상 전화 돌려요. 목이 아프거나 안구건조증
같은 직업병이 생기죠.
=드라마·영화에서 왜곡하고 건성으로 다루면 열 받아요. 회원과의
사랑을 다루거나, 전문적인 부분은 아예 안 건드리고.
=여성으로서 새로운 직업을 개척할 수 있다는 환상과 동경이 있어
지원했어요. 성차별 없이 평생 전문직을 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한 가정을 만드는 일이죠. 사회를 엮고
형성한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난상토론 참석자
▲이자경 듀오정보 주임(26·경력 4년)
▲정혜진 좋은만남 선우 사원(24·경력 3년)
▲정은주 닥스 클럽 대리(34·경력 2년)
▲이은주 피어리 대리(28·경력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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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고를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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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를 고를 때 남성은 성격(26.1%) 외모(22.2%) 학력(19.5%)을,
여성은 경제력(또는 직업·31.2%) 성격(31.0%) 가정환경(12.8%)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커플매니저 토론에 참가한 한 결혼정보업체가 지난 10월
전국 20세 이상 미혼남녀 1045명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배우자감'을
조사한 결과다.
또 남성은 교사(32.8%), 의사·약사 등 전문직(16.9%),
일반사무직(16.3%), 디자이너 등 기술직(10.6%),
금융직(6.6%)순으로, 여성은 의사·법조인·회계사 등
전문직(52.0%), 연구원·엔지니어 등 기술직(19.4%),
사업가·자영업자(7.4%), 일반사무직(6.9%), 금융직(6.5%)순으로
배우자 직업을 선호했다.
'결혼 후 맞벌이'를 원한다는 응답은 남성의 49.4%, 여성의
49.5%였고, '맞벌이인 경우가 사를 분담해야 한다'는 답변에
남성의 54.4%, 여성의 66.2%가 동의했다.
'결혼 경험이 있는 상대와 결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남성 42.5%, 여성 56.3%가 '절대 결혼할 수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