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미국 내에서 흑백 간 결혼이 급증하면서 코 높이, 입술
두께, 두발, 체형 등에서 '새로운 미국인' 수백만명이 생겨나고
있으나, 이같은 인종적 '잡종화(mongrelization)' 현상에 백인들보다
흑인들이 더 반발하고 있다고, 미국 월간지 애틀랜틱(Atlantic
Monthly)이 보도했다. 이 잡지 12월호는 '인종간 결합(Interracial
Intimacy)'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흑백 결합 여건은 전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이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흑인 부부 상(像·role
model)'이 생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든다는 점에서 흑인들이 흑백
결합에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 급증하는 흑백 결합 =미국 내 흑백 부부는 1960년의 5만1000쌍에서
1998년에는 33만쌍으로 6배 가량 급증했다< 그래프 참조 >. 비록 1998년
전체 부부 수(5530만쌍)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과거 재혼 이상에서
많던 흑백 결혼이 요즘은 초혼에서 많아지는 점이 눈에 띄는 변화다.
흑인 여성과 결혼했던 클린턴 정권의 윌리엄 코언(Cohen·유대계 백인)
국방장관, 백인 아내를 둔 프랭클린 레인스(Raines) 전(前) 백악관
예산국장 등이 이런 '인종 간 결합'이라는 뚜렷한 사회변화를
대변한다. 미국 내 최대 흑인인권 단체인 '전미(全美)유색인종
증진협회(NAACP)' 회장 줄리언 본드(Bond)의 아내도 백인이다.
◆ 흑인 사회의 엇갈린 반응 ='인종 간 결합' 증가에 대해 흑인사회는
"문화자산의 결합"이라며 찬성하는 계층,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남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보는 부류, "흑인문화를 훼손한다"며
반대하는 세력 등으로 나뉜다. 찬성파는 "백인과의 결합은 인종 차별을
줄이고, 흑인의 사회적 인맥을 넓히며, 흑인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흑인의 의견은 "백인과의 결합은 축하나
한탄할 일이 아니라, 단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라고 애틀랜틱은
밝혔다. 이들 '개인의 선택'이라는 견해의 흑인들은, "흑인이 원하는
것은, 백인과 어울리고 가능하다면 백인이 되는 것"이라는 일부
백인들의 주장도 반박한다.
◆" 이상적인 흑인 부부상(像)이 없다 "=1960년대 말까지 흑인
인권운동의 슬로건은 "흑백 차별을 극복한다(We Shall Overcome)"였다.
그러나 슬로건이 "검은 것이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로
바뀌면서, 백인과 결혼한 흑인 지도자들은 수모를 겪었다. 백인 아내를
둔 흑인 사회개혁가 조지 와일리(Wiley)는 1972년 4월 '아프리카 해방의
날' 집회 연설 도중 흑인 여성들로부터 "백인 아내는 어디 있느냐"는
조롱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선 "능력 있는 흑인 남자가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바람에,
흑인 여성이 피해를 본다"는 현실적 비판론이 자리잡았다. 흑인 미혼
남성의 3분의 2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상황에서, 능력 있는
흑인 남성들이 비(非)흑인 배우자를 선택할 경우, 그만큼 흑인 여성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것.
또 클레어런스 토머스(Thomas) 연방 대법원 판사, 가수 퀸시
존스(Jones), 전 포드 재단 이사장 프랭클린 토머스(Thomas) 등 바람직한
'흑인 부부상'을 만들어야 할 저명한 흑인 인사들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거나 염문을 뿌리면서, '흑인 부부상'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흑백 결혼 반대의 배경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