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로선 유례없이 '남자끼리의 동성애'를 멜로드라마적 시각에서
접근한 영화 ''로드 무비'(감독 김인식)가 완성돼 화제를 낳고 있다.
영화 초반의 동성애 섹스 신 때문에 '과연 등급을 받을 수 있을까'
일각에서 우려했지만 등급심의위원회는 지난 9일 '18세이상 관람가'
판정을 내려 10월 18일 개봉되게 됐다. 벌써부터 밴쿠버 영화제와
런던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국제적인 관심도 얻고 있다.
'로드 무비'에서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연기하며 스크린 첫
주연을 해낸 황정민(32)을 만났다. 황정민은 바로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순박하고 소심한 드러머 강수역을 기막히게 소화해냈던
맑은 눈빛의 남자다. 그는 '의형제' '모스키토' 등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다가 영화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이번 영화에서 황정민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석원(정찬)과,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서린)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동성애자 대식 역을 애잔한
눈빛으로 그려냈다. 그는 "생각보다 너무 간단히 심의를 통과해서
놀랐다"며 "'죽어도 좋아' 논란 덕을 본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동성애자 연기가 어렵진 않았나?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는 잘 할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쉬운 게 아니더군요. 머리론 '동성애'를 이해하면서도 저 자신
무의식적으론 밀어내려는 거부감이 있었어요. 촬영 내내 그런 내 안의
벽과 싸우느라 힘들었습니다."
―동성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궁금하다.
"저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권리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생각해 보니 동성애도 그저 사람과
사람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게 볼수 있는 것 아닌가 해요."
-가장 어려웠던 연기가 어떤 것인가.
"상대 남성인 석원을 바라보는 눈빛 연기였어요. 차라리 베드신은
어렵지 않았는데…."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장면도 실감나던데 쉽지 않았을 것같다.
"노숙자들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1주일간 서울역에서 신문지 깔고
노숙해 봤습니다. 그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안에도
지배자가 있고 이권 다툼이 치열하더군요."
―이 영화속 동성애 묘사에 무조건 거부감을 갖는 관객도 있을텐데.
"작가 이외수씨의 말을 빌자면, 곧은 대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은 굽은
소나무를 싫어할 수도 있고, 굽은 소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은 곧은
대나무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거부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혹 그런 거부감이 대나무에겐 '왜 너는 굽지 않았냐'고 따지는 것과
비슷한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황정민이 출연한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로드 무비'나
비주류 인생을 다룬 비주류 영화다. 그에겐 '화려함'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걸까. 그러나 황정민은 연극 무대에서 배를 곯아 본 사람 답게
담담했다.
"관객 10만 든 '와이키키…'나 800만 든 '친구'나 다 그 나름의
역할과 몫이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곧게 뻗은 도로로 빨리
가려고만 하는데,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가는 여행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멋있어요. 어차피 도달하는 곳은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