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순의 성(性)에 대한 상상력은 여전하다. 2권으로 나온
'아색기가(我色氣歌·소담 출판사)'를 보고 난 느낌이다. 평범한
소시민 남성의 가슴에 품었던 은밀한 욕망들이 거침없이 그의 펜에
담긴다. '누들누드'로 자신만의 성채를 지었던 이 작가는
'아색기가'로 그 영토를 점차 늘려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점 개업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레이터 모델들. 양영순의
상상력은 단순히 그들의 아슬아슬한 옷차림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의
무대 아래를 거울로 만들어 버린다. 분신술을 가르쳐달라고 졸라대는
삼돌이.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신지. 그날 밤 물레방앗간에서 만날
꽃분이와 특별한 밤을 보내기 위해서란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구하러
간 기사는 "정말 키스를 해야만 깨어나느냐"고 묻는다. 요정이
"그렇다"고 하자, 기사는 바지 지퍼를 내린다. "깨우기 전에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아색기가'가 성에 대한 상상력으로만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1억만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의 머리 위로 10원짜리로만 1억을
쏟아붓고, 범죄사실을 자백하지 않는 피의자의 얼굴에 한달 동안 벗지
않았던 형사의 팬티를 뒤집어 씌운다. 책 중간에 드문드문 4컷만화
'사이케치'도 들어 있다. 지금은 폐간된 잡지 '나인'에 연재했던
작품들이다. 엽기와 잔혹성에 있어서도 지고 싶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 하다.
'아색기가'의 뜻에 궁금할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처음 그가 이
만화를 시작할 때 생각했던 제목은 '개색기가(個色氣歌)'였다고 한다.
훈(訓)은 없고, 음(音)으로만 읽어야 할 조어다. "세상을 살면서 한
번쯤 내뱉고 싶은 말을 큰소리로 당당하게 내지르자"라는 생각이었다는
것. 하지만 스포츠신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제목이었고, 결국
'아색기가'로 타협됐다. 18세 이상.
(어수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