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은 성전환자·성도착자라는 풀이가 가리키듯,
흔히 '비정상'으로 간주된다. 성적 소수인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영화
속에서 이해·수용되기 보다는 비하·조롱·배척 당하기 일쑤며, 대개는
'별난 존재'로서 희화화되기 십상이다. 돌이켜보면 '가슴달린
남자(93)', '찜(98)', '노랑머리 2(2001)' 등 국산영화들은 말할 것
없고 '핑크 플라밍고(72)'나 프리실라(94)', '투웡프(95)' 등
화제의 트랜스섹슈얼 영화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트랜스섹슈얼들의
성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이성의 옷을 입고 기행이나 일삼곤
하는 복장도착(Transvestism) 따위의 묘사에 치중했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트랜스섹슈얼들을 에워싸고 있는 겹겹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폭로, 질타하겠다는 작품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이반적 존재로서
그들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은 감이 없지 않다.
간혹 예외들도 있다. 아래 작품들은 그 다섯 예외들이다. 주저하지 않고
선택한 1위작은 최근 국내 개봉한 '헤드윅(2001·감독 존 카메론
미첼)'이다. 드랙퀸 록커 헤드윅과 그(녀)의 밴드 앵그리 인치에 관한
환상적 록 뮤지컬 영화. 감독이 직접 연기한 헤드윅은 내가 만난 가장
인간적이고 성숙한 트랜스섹슈얼이다. 그간의 내 선입견을 여지없이
해체시킬 정도로. 그녀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성정체성을 내세워 사회를
향해 그 어떤 욕설이나 저주도 퍼붓지 않는다. 음악을 통해 분노를
삭이고 승화시킬 따름이다. 그 모습이 마치 이 지상에서 불가능할 것만
같은 사랑을 통해 그랬던 '오아시스(2002·감독 이창동)'의
홍종두(설경구) 같다.
헤드윅을 만나기 전,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매혹적 여장남자는 2위작
'크라잉 게임(92·닐 조던)'의 딜(제이 데이빗슨)이다. 그녀의 매력은
이 걸작 정치 스릴러를 지독히도 파격적이며 감동적 러브 스토리로
변화시킬 만큼 압도적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영화를 90년대 최고작
중 하나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매혹적이기는 '패왕별희(93)'의 데이(장국영)도 그 못지않다. 칸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탁월한 시대극이자 멜로드라마. 연약하기 짝이 없는
미소년이 자라 인기 경극배우가 되어서도 어릴 적부터 자신을 따듯하게
감싸주던 샬로(장풍의)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그저 한 게이의 사랑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아름답다.
'해피 투게더(97·왕가위)'의 그 사랑처럼.
트랜스섹슈얼이라고 모두 여장남자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통계적으로는 그 수가 훨씬 적지만 주목할 만한 수작 중에는 남장여자
영화도 적지 않다. 4위작으로 뽑은 '소년은 울지 않는다(99·감독
킴벌리 피어스)'가 그 대표작 중 대표작. 영화는 여성이건 남성이건
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오스카 여우주연상등을 거머쥔 힐러리 스웽크는 어지간한 남자보다도 더
남자 같은 열연을 펼치는데,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놓치기 아깝다.
마지막 5위작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여장남자 영화의 고전
'투씨(82·감독 시드니 폴락)'. 더스티 호프만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음에도 세상을 놀래키며 역사적 여성 캐릭터 투씨를 창조해냈다.
영화는 성정체성보다는 생존 때문에 여장을 하게 되는 투씨의 삶을 통해
성에 대한 이 사회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자, 여러분들도 트랜스섹슈얼의 은밀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겠는가.
( 전찬일·영화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