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우크라이나에서는 비명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프에서 지역 공군부대 창설 60주년을 기념하는 에어쇼가 열렸는데,
저공 곡예를 선보이던 전투기가 느닷없이 화염에 휩싸인 채 관중석을
덮치는 바람에 83명이 사망하고 116명이 부상한 것이다. 사망자 숫자로
보면 이번 사고는 에어쇼 사상 최악의 사고다.
◆ 사고 순간 =행사 첫날인 이날, 주말을 맞아 대개 가족 단위로 약
1500명이 에어쇼를 보기 위해 모였다. 2분 정도 곡예 비행을 하던
수호이(Su)27 전투기 1대가 돌연 활주로 근처의 나무와 충돌한 뒤
활주로에 있던 다른 항공기의 날개를 치고, 불길이 솟은 채 약간
상승했다가 관중석으로 추락했다. 현지 TV 방송사 마르타 브루트코프스카
기자는 "폭발하는 순간 집 한 채만큼 거대한 화염 덩어리와 함께 시꺼먼
연기가 솟아올랐다"며 "수백명의 관중들이 피를 흘리며 대피하느라
마구 달려 나갔으며, 행사장에는 손·발 등이 떨어져나간 시체가
나뒹굴고, 가족들을 찾기 위한 확성기 안내 방송이 이어지는 등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고 말했다. 탑승했던 2명의 조종사는 추락
직전 비행기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 사고 원인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사고 원인이 엔진 결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상황을 찍은 필름을 본 러시아 전투기 조종사들은
조종사의 실수로 보고 있다. 구 소련 전투기 조종사 안토쉬킨은 러시아
NTV와의 회견에서 "Su27은 성능은 물론 안전성을 입증받아 조종사들이
선호하는 기종"이라며 "사고기가 지나친 저공 곡예를 시도한 것이 사고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에어쇼는 일반적으로 관객석으로부터
적어도 150~200m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날 사고기는 관객석에
지나치게 근접 비행을 했다"고 지적했다.
◆ 최악의 에어쇼 사고 =이날 사고는 에어쇼 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지금까지 최악의 사고는 1988년 독일의 미군 공군기지에서
열린 에어쇼 도중 이탈리아 전투기가 관객석을 덮치며 70명의 사망자와
400명의 부상자를 낸 것이다.
1986년 양산 체제에 들어간 Su27은 구 소련 공군력을 상징하는 최첨단
전투기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주력 전투기다. Su27은 미국의
F15(이글 파이터)같이 2개의 수직꼬리 날개와 2개 엔진을 장착했으며,
1981년부터 우크라이나 공군에 배치됐다. F15기와 대등한 기종으로
알려졌지만, 각종 에어쇼에서 날카로운 각도의 특수 기동을 선보이며
특정 분야에서 F15기를 압도해왔다. 1998년 파리 에어쇼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코브라 기동'(수평 비행 도중 갑자기 수직 상승했다가,
정점에서 엔진을 끄고 기수를 하늘로 향한 채 그대로 떨어지다가 다시
수평으로 비행하는 기술)은 서방 전문가들을 사로잡았다.
◆ 우크라이나의 우려 =지난해 미사일 오발로 흑해 상공을 날던 러시아
투폴례프(Tu) 여객기를 추락시켰던 우크라이나는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사고가 나자 크림반도에서
휴가 중이던 쿠치마 대통령은 급거 리비프로 향했으며, 공군 에어쇼를
전면 중단하도록 지시하는 등 사고 수습에 나서고 있다. 쿠치마 대통령은
참사 책임을 물어 페트로 슐리아크 군참모총장과 스트렐니코프
공군참모총장 등을 해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9일을 국장(國葬)일로
선포했다.
(모스크바=鄭昺善특파원 bsch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