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를 켜라 ’시나리오를 쓴 박정우씨.그는 “글이 잘 안 풀릴 땐 머리를 괴롭히는 게 버릇 ”이라고 말했다.<br><a href=mailto:leedh@chosun.com>/이덕훈기자 <


한 편의 영화가 히트하면 감독-배우가 '뜨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
흥행 영화는 시나리오 작가가 그에 못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17일 개봉돼 할리우드 대작들 틈바구니에서도 28일까지 전국 90만(영화사
추산)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한 코미디 '라이터를 켜라'(장항준
감독)의 박정우(32·필름매니아 공동대표)작가다. 개봉전 가진
시사회에서도 상당수 영화 관계자들은 "역시 박정우표 코미디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3,4년새 박정우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는 만들었다 하면 안타 아니면 홈런이기 때문이다. '주유소
습격사건(1999·전국 260만)', '선물(2001·126만)'을 흥행시켰고
'신라의 달밤'(2001·450만)'은 역대 한국영화 흥행순위 6위에
올랐다. 한 영화관계자는 "이젠 '박정우 각본'이란 크레딧만 보고도
영화를 보러오는 팬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신라의 달밤'땐 각본료
뿐 아니라 흥행지분(10%)까지 총 3억7000만원을 받은 '억대 스타'다.
그의 펜 끝에서 솟는 '괴력'이 궁금해 박정우를 만났다. 염색한 퍼머
머리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그는 인디 밴드 드러머처럼 보였다.

―‘박정우표 코미디’가 인기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쓸 때마다 '관객을 어떻게 만들어
놓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주유소…'는 끝날 때쯤 관객이 주인공들
편이 되도록 썼고, '선물'은 펑펑 울도록, '라이터…'는 봉구의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이 정말 맛있어 보이도록 만들자는 목표만 생각하며
썼다."

―시나리오를 빨리 쓰기로 유명한데.

"초기엔 열흘이면 한편 썼다. 빨리빨리 써서 돈 벌려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2주안에 안 써지면 내가 쓸 얘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요즘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져서 그런지 많이 느려졌다."

―‘라이터…’는 박정우 시나리오중 가장 호평을 받는 듯하다.

"제일 힘들게 썼다. 집필중 암 투병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과로로
목 디스크가 생겨 침 맞아가면서 썼다."

박정우씨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라이터를 켜라 ’(왼쪽)와 ‘신라의 달밤 ’.

―늘 조폭과 패싸움이 등장하는 데 대한 비난도 많다.

"사춘기 시절, 집·학교·교회만 왕복하며 살아서, '일탈'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쓰고 보면 폭력이 많다."

-코미디를 주로 히트시켰는데 당신은 코미디가 특기인가.

"내 진짜 취향은 멜로다. 극장 맨 뒤에서 관객이 우는 모습을 볼 때 꽤
희열을 느낀다."

그동안 재미있는 시나리오들을 써서 남을 줬던 그는, 이젠 제 손으로
쓰고 제 손으로 만들어 감독 데뷔하고 싶어서 지금 한창 집필중이다. 이
이야기꾼이 '자기 몫'으로 감춰놓은 비장의 카드는 뭘까.

"코미디·멜로·느와르·액션·팬터지가 다 들어가는데, 그 이상은
말할수 없어요. 옛날부터 데뷔용으로 품어놓고 아무에게도 얘기 안
했습니다. 그런데 내 이름에 대한 기대가 자꾸 높아지니 그 기대치를
맞출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도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