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자동차를 타고 덴버로 가는 길에 시골의
간이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일행밖에 없었다. 13세 남짓한 어린 소녀가 나와
우리를 맞아주었고 주문을 받았다. 나는 햄버거와 콜라를 시켰고 친구는
햄버거와 맥주를 시켰다. 웬일인지 그 소녀는 주문을 받다 말고 우리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언니를 불렀다. 우리는 의아했다. 그냥 주면 될
것을 왜 언니를 부를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소녀는 내 친구가
주문한 맥주를 팔 수 없는 미성년자이므로 언니를 불러 주문을 다시
받았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시골 간이식당에서 지켜지는 법을 보고 우리
일행은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법이란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타율적 규범이며 질서란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자율적 규칙이다. 세상 일이 나와 남의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이 복잡한 관계를 일정한 룰을 만들어 함께 지키자고 약속한
것이다. 법과 질서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할 때 빛을
발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사회에는 법을 만들어 놓고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례들이
너무 많다. 법 자체를 부정하고 법을 어기는 것이 오히려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법을 만들면 그 법에 대한 편법이 먼저 판을
친다. 우리나라의 교통 문화를 보자. 위반의 문화라는 오명이
붙어다닌다. 위반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항변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희망을 잃은 사회이다. 노동운동의 쟁의수단 가운데
준법투쟁이라는 것이 있다. 법을 지키면서 투쟁한다는 취지다. 법을
지키면 불편하다는 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도대체 이런 역설이 어디
있는가. 부동산 거래 등 금전적 거래를 하다 보면 먼저 알려주는 것이
법망을 피하는 요령이다. 세금을 덜 물게 해주려는 의도라고 하지만 결코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 법을 지키면 불편하고 법을 지키지 않으면
편한 사회구조라면 법이 존재할 아무런 가치가 없다. 때로 입법을 하는
데 있어서 일부 소수의 의견을 반영하여 강자의 논리를 대변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한다. 법은 기본적으로 공평하지만 법을 악용하는 사람에게는
공평이란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 기초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기초사회의 기본 단위는 곧
가정이다. 가정은 천륜적 관계로 이루어진 곳이다. 가정은 자연스러운
질서가 있으며 법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사회는 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법을 필요로 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 쌍에 한 쌍 꼴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도 한다. 질서 교육의 기본은
가정이다. 결손 가정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초사회의 질서의식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월드컵 이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고,
세계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있다. 기회는 왔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달라진 긍정적 시각을 완전하게 뿌리 내리는 일이다. 우리
민족이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우선 기초사회의 법과 질서부터 다잡아
나가야 할 때다. 기초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단위가 흔들리면 나라의
기둥이 흔들린다. 범죄자들의 범법행위와 위정자들의 부정부패는 법이
엄정한 집행으로 어느 정도 그 응징이 가능하지만 기초사회에서의 작은
부정은 그 직접적 대응이 불가능하다. 오직 기초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지켜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은 유토피아다. 모두가 고단하고 힘든
세상에서 유토피아를 바랄 수는 없다. 백명에 한두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백명에 열명 이상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사회는 건강성을 잃은 사회다.

우리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다. 윗물이 맑지
못하면 우리 기초사회인 아랫물이 먼저 맑아 보자. 아랫물이 맑으면
혼탁한 윗물이 내려와 정화된다.

(조정원/경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