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은 "일제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현재의 필요에 따라 재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bR><a href=mailto:yhhan@chosun.com>/한영희기자 <

소설가 복거일(卜鉅一·56)이 최근 계간지 「철학과 현실」 기고문을
통해 『혹독한 일제하에서 적극적으로 반일(反日)을 한 몇몇을 뺀다면
모든 조선인들이 일본통치를 도운 셈』이라며 『친일의 개념은 정치가
아닌 역사의 영역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 논란이 일고 있다. 연초
김대중 정권을 비판한 에세이 「목성잠언집」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지난
98년에는 「영어공영화론」을 주창하고 나서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유주의자를 자임하는 복거일은 완고한 보수주의자라는 비난도 받지만,
늘 담론의 중심에 서서 통설(通說)과 맞붙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4년 간의 대전 생활을 청산하고 최근(2월) 서울 수색의 한 아파트로
보금자리를 옮긴 그를 지난 31일 만났다. /편집자

-모든 사람에게 친일의 굴레를 씌워 오히려 그 참 뜻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친일파를 처단하자」는 주장은 4가지 가정을 전제로 한다. 「
친일행위를 뚜렷이 정의할 수 있다, 그 정의에 따라 친일행위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친일파에 대해 그 죄과를 묻고 판결할 수
있는 법적·도덕적 권위가 우리에게 있다, 그런 단죄가 우리사회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이거나 적어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하나도 성립이 안된다.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현재의 가치관을 자꾸 당시에 대입해 재해석하려는 데
근본문제가 있다. 』

-친일을 정의하기 어렵고 단죄해 봐야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그것의
불가피성을 너무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닐까.

『대다수 조선인들은 일본통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수동적
친일파였던 셈이다.당시 일본통치는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하나의
체제였다. 따라서 그것은 친(親)체제라면 몰라도, 친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완용은 친일파지만, 박흥식은 친체제파인 것이다. 』

-그래도 이광수같은 민족지도자의 친일은 문제가 아닌가.

『당시 지도자들은 불완전한 정보에 의거해 최선의 판단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동화하는 것이 조선민족의 살 길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광수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친일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뒷날 밝혀진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재단하려 들면 안된다. 미당도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 줄은 몰랐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더라도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 않나.

『「법이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있지만, 당시는 대부분이 일제에
협력하며 살았다. 누구나 동경제대에 가고 싶어 했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편안히 살기를 원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어떤
사람의 행동은 그것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을 때만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친일파를 모범으로 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항일운동에 목숨 바친 독립투사들은 뭐가 되나.

『그래서 친일 행위만 들추지 말고 해외로 나가 위험과 고생을 감수한
항일운동가들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조국이 해방되거든 내 유골을
조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압록강변에 묻혔다는 편강렬 선생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민족정기를 높이려면 항일운동사
정립에 힘을 쏟아야 한다. 』

-프랑스는 전후 부역자들을 철저히 단죄했다고 들었다.

『우선, 프랑스와 우리는 경우가 다르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것은
4년 남짓, 우리는 청일전쟁 이후 60년 가까이나 된다. 또 독일은
프랑스를 식민지화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점령한 상태였다. 종전직후
부역자들을 린치한 적은 있지만 재판을 통해 단죄한 적은 없다. 비시
정부 수반을 지낸 페탱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재판부가 14대
13으로 갈렸다. 지금도 그에 대해 패전한 프랑스를 지킨 애국자라는
견해와 반역자라는 견해가 맞서 있다. 최근 미테랑 대통령은 비시 정권에
협력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역사공부도 제대로 않고 좌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대로 휩쓸리는 세태가 문제다.-완고한 보수주의라는
비난이 있던데

『극우라고 난도질 당하고 있다. 사회전체가 좌경화하고 있다. 모든
사회적 이슈를 통일로 몰아가고, 그나마 북쪽에 기울어 있다.』

-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인가.

『나는 10년 전에, 통일은 자유민주주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통일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으니 논의가 진전이 안되는
것이다. 통일은 우리가 잘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선험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요즘 문단 사정이 복잡한 것 같다.

『문단엔 국수주의자들이 많다. 예술가들이 사회과학 공부는 안하고
대중서만 조금 읽는데 대개는 좌파서적이다. 이들이 「울림통」 역할을
한다. 나는 작가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소시민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영어공용화에 대한 생각엔 변함이 없나.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다 하고 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경제논리란
무서운 것이다. 민간이 늘 앞장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