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3년차 투수 엄정욱이 지난 11일 인천 기아전서 국내야구 역대 최고인 시속 156㎞를 기록했다. '빛처럼 빠르다'는 광속구 중에서도 단연 넘버원이었다. 국내 야구에서는 그동안 박동희, 선동열 등이 최고 강속구 투수였다. 엄정욱의 '156㎞'를 계기로 국내 광속구 투수들, 미-일 사례, 스피드 측정법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11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기아전.
▶오후 7시 13분-강병철 감독은 9회초 무명의 오른손 투수 엄정욱(21)을 마운드에 올리며 불펜에 김상진을 대기시켰다. 7-0으로 넉넉히 앞선 상황이었지만 '혹시나'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공 한두개만 뒷그물을 때리면 바로 빼버리려고 했어."
▶오후 7시 21분-경기가 끝난후 강병철 감독의 평가? "오늘처럼만 던지면 '왔다'지."
SK 3년차 투수 엄정욱이 프로통산 최고 스피드를 기록하며 SK 마운드의 총아로 떠올랐다.
세타자를 맞아 삼진 2개와 땅볼 하나. 10개의 직구중 무려 9개가 150km를 훌쩍 넘겼다. 이종범에게 던진 4구째 볼은 무려 156km. 지난 95년 국보급투수 선동열이 잠실구장에서 기록한 공식경기 최고스피드(155km)를 7년만에 앞서는 쾌투였다.
엄정욱의 괴력투는 일찌감치 예고됐었다.
2군에 머무르던 지난달말 상무와의 연습경기에서 상무측 스피드건에 무려 159km란 믿기지 않은 숫자를 찍었다. 2군경기서 156km를 기록한 것은 다반사.
지난 99년 중앙고 에이스였던 엄정욱은 빼어난 체격조건(1m91, 93kg)에서 뿜어져나오는 140km 후반의 강속구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제구력 불안이 발목을 잡았던 미완의 대기.
지난해 여름 팔꿈치 통증 이후 최계훈 2군 투수코치는 팔로만 던지는 투구폼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하에 하체를 이용해 밸런스를 잡는 폼을 지도했다. 결과는 대성공. 스피드와 제구력이 모두 향상되면서 자신감이 붙은 것.
"포수 미트만 보고 힘껏 던졌습니다." 괴물투수의 전성시대가 활짝 열릴지 궁금하기만 하다. < 인천=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hschung@ >
◇엄정욱 11일 기아전 투구분석
=상대타자=시속(km)=구질=구종=
=이현곤=154=직구=스트라이크=
==152=직구=파울=
==114=커브=볼=
==151=직구=헛스윙 삼진=
=이종범=148=직구=파울=
==153=직구=볼=
==154=직구=파울=
==156=직구=볼=
==118=커브=헛스윙 삼진=
=김종국=116=커브=볼=
==150=직구=볼=
==153=직구=스트라이크=
==152=직구=2루수 땅볼=
◇국내 광속구 최고 투수는
모두 꿈꾸지만 아무나 넘볼 수 없는 꿈의 구속 150km. 한국프로야구에도 '제2의 선동열' '최동원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어깨들이 즐비하다.
올시즌 주전급 중 150km대 광속을 돌파한 대표적인 투수는 두산의 마무리 진필중이다. 진필중은 지난 4일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SK전서 154km를 찍었다. 비교적 후한(?) 문학구장 스피드건을 고려해봐도 고무적인 기록이다. 팀 동료 이혜천도 152km를 기록, 진필중과 어깨를 맞췄다.
한화 정민철도 지난 8일 대전구장에서 벌어진 기아와의 2군경기에서 150km를 꽂으며 부활의 노래를 불렀고, 현대의 괴물 루키 조용준도 마구에 가까운 슬라이더와 함께 최고 152km 직구를 장착해 두고 있다.
스피드에 관한한 빼놓을 수 없는 어깨는 LG 신윤호. 지난 시즌 수시로 150km를 넘나들었던 신윤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커트라인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재야의 영건들도 스피드만 치면 최고수준. 삼성 이정호는 지난 2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스피드건에 153km를 세겨 넣었다. 프로 2년차인 기아 김주철도 '불펜의 선동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장외에서는 150km를 웃도는 직구를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 기아 김진우와 강철민, LG 이동현 서승화, 삼성 라형진 등도 140km대 후반을 찍어대는 준 광속구 투수들이다. / 스포츠조선 민창기 기자 huelva@
◇미-일 최고 스피드느
메이저리그 최고 스피드의 주인공은 샌프란시스코의 마무리투수 롭 넨(33)이다. 넨은 플로리다 말린스 소속이던 지난 97시즌 월드시리즈에서 101마일(162㎞)의 광속구를 선보였다. 이전까지는 놀란 라이언의 100마일(161㎞)이 최고기록이었다.
2000시즌에는 바톨로 콜론(29ㆍ클리블랜드)이 역시 101마일을 찍어 메이저리그 역대 공식 최고 스피드 기록을 세웠다. 애너하임의 마무리투수인 트로이 퍼시벌도 160㎞의 직구를 가졌다.
애리조나의 랜디 존슨은 159㎞를 '꾸준히' 던질 수 있는 투수로 유명하다. 로저 클레멘스(뉴욕 양키스)도 전성기 시절엔 160㎞를 간간이 선보인 바 있다.
일본 최고 스피드는 160㎞. 뉴욕 양키스에서 텍사스로 이적한 일본인 투수 이라부 히데키가 롯데 마린스 시절 남긴 기록이다.
◇스피드건 믿을 수 있나
투수들이 투구한 공의 스피드는 초속-중속-종속으로 나뉘는데, 주로 얘기하는 속도는 가장 빠른 초속이다.
하지만 전광판에 나오는 속도와 스카우트들의 스피드건에 찍힌 속도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스피드건과 속도를 재는 위치에 따라 속도가 달리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보통 미국제 스토커레이더(stalker radar)와 캐나다제 저그스(jugs) 두 종류가 쓰인다. 대부분의 스카우트들이 저그스를 이용하고 있으나 최근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애용하는 제품인 스토커레이더도 눈에 띈다. 다루기가 간편하고, 비교적 속도가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보급이 늘어나느 추세. 보통 스피드건에 따라 1∼2㎞의 작은 차이가 있지만 4∼5㎞나 차이가 나기도 해 논란이 일기도 한다.
< 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 indy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