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정치의 폐해로 아들을 잃은 영조. 그는 정치적 화합을 실현하는
구심점으로 '탕평책'을 고안해냈다. 대신들과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그 의미를 환기시키기 위해 '탕평채'란 음식을 선보였다고
한다.
탕평채는 청포묵에 갖은 야채·달걀 지단·김 등을 얹어 버무린
묵무침이다. 오색의 고명과 더불어 청포묵의 밝은 흰색이 어우러져
매끈한 묵의 감촉과 사각거리는 야채의 질감이 조화롭다. 이는 영조의
의도가 재현된 기가 막힌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고르다는 뜻을 지닌
탕탕평평(蕩蕩平平)이란 말에서 유래한 탕평채는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균형을 갖춘 음식이다. 청포묵의 탄수화물뿐 아니라 계란 지단과 고기의
단백질, 김·미나리·숙주의 비타민과 무기질을 고르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포묵은 녹두 녹말을 굳혀 만든 것이다. 중국 당나라 맹선(孟詵)이 지은
식료본초(食療本草)에 따르면, 녹두는 원기를 솟게 하고, 오장을
조화시키며, 정신을 안정하게 한다고 명기돼 있다. 이에 예로부터
녹두죽은 환자나 병을 앓은 뒤 보양식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반면 녹두는
해독작용이 매우 강하므로 한약을 먹을 때는 함께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몸이 차가워 설사를 하거나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한편 탕평채에 향긋함을 더하는 미나리는 비타민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혈압을 내리는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담백하고 쫀득한 맛이 일품인 표고버섯은 위장의 기능을 촉진하고,
가래를 삭힐 뿐 아니라 몸의 기운을 돋우는 데도 도움을 준다.
청포묵을 곱게 썰려면 칼에 물을 묻히면 된다. 또 썰어낸 것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구면 부드러워진다. 여기에 소금·참기름으로 밑간을
한다. 곁들여질 소고기, 표고버섯은 묵의 두께를 고려해 썰고 양념한
후에 볶아낸다. 미나리는 데쳐서 준비하고 색감이 뛰어난 당근도 곱게 채
썰어 기름에 살짝 볶아낸다. 청포묵에다 준비한 재료들을 고르게 섞은
후, 김과 달걀 지단 등으로 장식하고 마지막으로 양념장을 끼얹는다.
취향에 따라 초장을 곁들여 먹어도 좋다.
( 안병철 / 한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