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별아(33)씨가 라틴 아메리카의 신화와 역사, 문명 등을 배경에
깐 본격 축구소설 '축구전쟁'(웅진닷컴刊)을 냈다. 2002 한일월드컵
개막 100일을 앞두고 탈고된 이 소설은 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사이에 3판2선승제의 지역예선이 급기야 양국간 전쟁으로 비화된 축구의
광기를 소재로 삼았다. 작년 말 고원정씨가
'마지막15분'(생각의나무刊)을 낸 바 있지만, 여성작가의 축구
소설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스포츠와 문학·예술'의
관계와 장르 확장에도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환상적 수법의 역작이라는
평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엄밀하게 축구소설만은 아니다. "허기와 빈곤 속에서
성장했던 삶, 불법적인 방식으로만 유지되던 삶, 죄로 점철된 임종의
고해로서만 정화되는 삶, 그것이 라틴 아메리카적 삶"(68쪽)이라고
울부짖고 싶은 20세기 인류문명사의 기만을 고발하고 있다. 온두라스
소년 주인공 뻬뻬(12), 그리고 동생에게 TV를 사줄 돈을 벌기 위해
카지노에서 속임수를 쓰다 붙들려 결투 끝에 죽고마는 그의 형
알폰소(20), 콜걸로 전락하는 알폰소의 애인 이사벨(17), 수차례 이혼에
10명의 자식을 생산하고도 겨우 다섯을 살려낸 그들의 어머니…. 이 모든
것들은 "정복자에 강간당한 대지와 그 사생아로 태어난 혼혈의
고아들"을 껴안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삶이기도 했다. 다음은 작가와
일문일답.
-라틴 아메리카에 취재 여행을 갔는가?
"가고 싶었지만 못 갔다. 엄청나게 비싼 비행기값을 보면서 라틴
아메리카가 얼마나 먼 땅인가 생각했다."
-언제부터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강릉은 본래 축구의 고장이다. 어릴 때부터 설기현·김도근을 배출한
강릉상고와, 김현석·우성룡을 배출한 강릉농고의 농-상전, 상-농전을
보며 자랐다. '뽈을 차는' 일은 관심 이전에 자연스러웠다."(강릉서
태어난 작가는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1993년 등단했다.)
-축구를 해본 적이 있는가?
"내 체육성적은 줄곧 '미'를 넘지 못했다. 직접체험의 부재가
한계이고, 고통이다."
-무엇이든 소설문학의 소재가 될 수 없는 것은 없을 것이다. 소설문학의
소재로서 축구는 어떤 특징을 지녔는가?
"축구의 속성은 산문적이지 않다. 골은 긴장의 순간, 예고없이 터진다.
그래서 소재를 다루기에 어렵고 까다로웠지만, 그렇다, 소설이 될 수
없는 것은 없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 월드컵 예선전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축구는 정열의 스포츠이며, 정열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전쟁, 광기는 어두운 정열의 극단이다."
-식민시대 피정복자가 정복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축구였다.
축구는 저항의 역사를 가졌는가?
"저항과 타협의 역사를 모두 가졌다. 전쟁과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고, 마피아와 독재자를 열광시키는 스포츠가 축구다."
-축구에는 본질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삶이 응축돼 있다고
본다면, 축구에는 어떤 꿈들이 내재돼 있는가?
"근본적으로 원시의 꿈, 야성의 꿈, 수렵의 꿈, 타자와의 합일에 대한
꿈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신분 상승의 꿈, 부와 명예에 대한 꿈,
결국 하나인 단순한 현세의 꿈도 된다."
-축구가 스포츠 그 자체로서 갖는 매력은 무엇인가?
"축구는 치밀하게 계산하거나 묘기를 감상하듯 볼 수 없다. 스스로
흔들려야 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축구가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을 아직도 가난과 광기 속에 붙잡아 두는
마약 같은 요소는 없는가?
"마약이 애초의 쓰임에서 그러하듯, 축구 또한 치유와 중독의 양면으로
작용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축구는 끝까지 맨몸이라는 것 때문에 인간의 순수한 의지와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라고 하지만, 손을 쓰지 않는 유일한
스포츠로서 야만성과 원시성을 그대로 갖고 있는 스포츠가 아닌가?
"유전자를 복제하는 인류가 복수를 빌미로 전쟁을 벌이고, 발로 골을
차넣는 가장 단순한 것에 열광한다. 우리는 정녕 문명인인가,
야만인인가."
-축구가 오랜 동안 남성 전유물이었다면, 이제 앞으로 여성과 축구는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국제여자대회 MVP 곽미희가 내 중학교 후배다. 젊고 건강한 그들의
당차고 밝은 모습을 보면 벅차다. 그들은 주로 어머니의 권유로 공을
차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상이 변화하는 만큼, 여성들의 그라운드도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