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생활의 발견 ’.

영화 출연에서 재미를 못본 연극배우 경수(김상경)은 “언제 한번 놀라오라”는 선배 전화를 받은 다음날 바로 선배가 사는 도시 춘천으로 향한다. 그곳서 무용가 명숙(예지원)과 뜻하지 않게 함께 밤을 보낸 경수는 부모가 사는 부산으로 향한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선영(추상미)을 따라 경주에서 내린 경수는 선영과 성관계를 갖는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생활의 발견’(22일 개봉)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클로즈업해 펼쳐놓는다. 1만배로 확대한 피부 현미경 사진이 마치 달 분화구를 연상시키며 본디 모습을 전혀 다른 의미로 보여주듯, 카메라 앞으로 바짝 끌어당겨 관찰, 발견한 ‘생활’은 모방과 경멸, 우연과 의미없는 반복 등으로 가득 차있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년)에서 어긋나는 관계들을 비정하리만치 냉정하게 들여다봤고,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호응을 얻었던 ‘오! 수정’(2000)에서는 남녀의 짝짓기 정치역학을 조롱하듯 펼쳐보였던 홍감독이 이번에 카메라를 들이댄 대상은 역시 사람들이며 남녀 관계다.

아무려면 연애만큼 통속적인 게 있겠나. 우리가 다 이런 속물이지. 감독은 한 남자가 서울을 떠나 춘천, 경주로 일주일 여행하는 경로를 보여주며 그렇게 말한다. 전작들에 비하면 비통함은 순화됐고 빈정거림도 상당히 옅어졌다. 그러나, 일상의 비속함을 까발리는 심술은 여전하다. 다만, 좀더 뭉근하게 웃게 만들 뿐.

일상 언어란 얼마나 지리멸렬한지. 일상에 대한 감독의 관찰력은 등장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생생하게 확인된다. 출연료를 받으러 영화사에 간 경수가 선배인 감독에게 돈달라고 요구하는 말들이나, 선배가 경수에게 “괴물은 되지 말라”고 하는 말은 너무나 진부하기에 더 현실감있다. 그리고 이 말들은 뒤로 가면서 몇번 반복되면서, 독특한 울림을 갖게된다.

‘생활의 발견’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너무나 일상적인, 그래서 대본에 ‘쓰인’ 말 같지 않은 대사들과 천연덕스런 카메라가 삐걱거림없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공치사를 산해진미 삼아 춘천 선배가 내놓은 상은 양은상에 덜렁 닭죽 하나, 김치 한보시기 뿐이다. 그걸 또 고맙기 그지 없다는 표정으로 받아먹는 경수의 얼굴이 화면에 비치면서 관객들은 실제 상황과 표현 언어의 불협화를 시청각을 모두 동원해 감지한다.

도대체 우리 사는 세상엔 새로운 것고 없고, 진짜도 없어, 감독은 그렇게 말한다. 춘천 선배의 입을 빌어 털어놓은 청평사 회전문에 얽힌 전설은 바로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앞의 것, 남의 것의 무의식적 모방이며, 세상사는 제 꼬리를 문 뱀 처럼 닫힌 원을 그린다는 것. 춘천 공지천의 발로 젓는 오리배가 경주 보문호의 오리 유람선으로 확대 반복되며, ‘사랑한다 말해달라’던 명숙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질렸던 경수가 선영에게 “사랑한다”며 “함께 죽자”고 말하는 웃지 못할 반복이 대구(對句)를 이룬다.

상사병 걸렸던 회전문 전설의 주인공을 자기가 반복하고 있다는 경수의 자기 발견이야말로 ‘생활의 발견’의 요체다. 은유는 깊지않고 상징도 단순하지만, 순발력있는 대화와 상황의 부조리함이 여러차례 웃음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