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가 아니에요. ‘프리터(freeter)’라고 불러 주세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서모(27)씨는 고등학생 영어과외와
주말 출장뷔페 서빙, 야간 게임장 환전업무 등 '겹치기' 아르바이트로
한 달 150만원 정도를 번다. 서씨는 "아르바이트지만 조금만 열심히
일하면 직장에 매이지 않고도 그만한 돈은 벌 수 있다"며 "여가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어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자유롭다'는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를 합성한
'프리터'는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경제불황으로 인해 직장없이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청년층에게 붙어진 신조어(新造語)다. 우리
나라에서도 IMF 이후 취업난과 경력직 상시 채용 등 취업환경이
변화하면서 서씨 같은 '프리터족(族)'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프리터의 장점으로 자유로운 시간활용, 직장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는 점 등을 들고 있으며, 한번 익숙해지면
3~4년씩 이런 생활을 계속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웹디자이너 김태균(28·연세대 생활과학부 휴학)씨는 몇몇 중소기업의
홈페이지 관리 '아르바이트'로 한 달 150만~200만원 가량을 번다. 그
동안 식당웨이터·과외교사·DJ 등 5~6가지의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회사에 취직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월 말 아르바이트 경력을 살려 친구 4~5명과 서울 양재동에
공동 사무실을 내고, '버추얼 에이전트'란 회사도 차렸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를 맡기는 업체들이 세금계산서 발행을 요구하는 데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른 친구들과 분담할 일도 있어 사무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우전자에서 근무하다 지난 98년 그만둔 김민정(여·27·가명)씨도
프리터 생활이 벌써 4년째이다. 삼성생명의 텔레마케터와 PC방 종업원
등으로 일해 버는 한 달 수입은 100만원 정도. 김씨는 "괜찮은 정규직만
구한다면 프리터 생활을 청산하겠지만 아직은 좀더 즐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사이트 '알바로 www.albaro.co.kr '가 지난
17~18일 회원 11만명 중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0.4%가 '2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15.5%는
아르바이트를 '직업'처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한시적 근로자와 파트타임, 용역근로자 등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의 숫자는 전체 임금근로자(1321만6000명)의 27.3%인
360만2000여명에 달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41) 동향분석실장은 "고용시장이 선진국 형태로
변해가면서 이들처럼 주위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