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요는 엔카다' 일본에 오기 전에 그냥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헌데 살아보니 정말 황당한 생각이었다. 레코드 판매 50위를
보면 겨우 한 두곡이 엔카이고 48곡쯤이 재패니즈 팝인거다. 그래서 난
'엔카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또 한번 생각이 바뀌고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끄떡없는 아성을 쌓고 있는 스타들이
살아있는 장르는 엔카뿐이다. '키타지마 사부로', '이츠키
히로시'등등 10년전과 똑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이름들을 숨쉬지
않고 수십명 열거할수 있다. 이 저력의 엔카 가수들 명단에는 한국
출신도 하나 있다. 계은숙이다. 팝송을 잘 부르긴 하지만 계은숙이
유명해진 것은 역시 허스키한 목소리의 엔카 곡들이 히트했기 때문이다.
엔카 가수들에겐 저력이 있다. 재팬 팝과 비교해 보자. 현재 20대들에게
톱 평가를 받는 케미스트리(chemistry)나 코스페라스(ゴスペラ?ズ)같은
팝그룹은 일년 전만해도 듣도 보도 못하던 그룹이다. 쿠와타 케이스케
같은 몇몇 팝의 대가들을 빼면 팝 쪽의 인기 판도란 한때의 유행이다.
헌데 엔카는 나무의 생명력 같은 끈질김과 꾸준함으로 고정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팝처럼 폭발적이진 않지만 10년 전 CD가 지금도 꾸준히
팔린다. 수십명의 톱클라스 엔카 가수들이 연중 벌이는 공연에 몰리는
팬들 숫자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가라오케에서도 압도적으로 사랑받으며
엄청난 매출도 창출된다. 최근 스무살짜리 남자가수 '히카와 키요시'가
엔카로 떴다. 이 사실엔 일본인들도 놀라고 있는데 '싫다면
싫은거지'라는 가사가 젊은이 간에 유행어가 되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 젊은 친구는 향후 일본 가요계에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웠다.
첫째, 작품만 좋으면 엔카가 젊은 층에도 어필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젊은 가수가 히트하는 데에는 경쟁 빡빡한 재패니즈 팝보다 젊은 가수들
무인지경인 엔카 쪽을 노리는 것도 성공 전략이라는 사실.
우리 트로트계는 어떤가. 질적, 양적으로 너무나 힘이 빠져있다.
노래하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 이쪽을 떠나고 있다. 그러나 찬스는
오히려 이쪽에 있다. 가요계에서 성공하려는 젊은 친구라면 오히려 이런
시기에 이 장르를 노려야 한다. 신선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이 장르도
대박난다. 특히 일본 시장을 생각한다면 일본에서 히트한 단 한명의
한국팝 가수도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 우리 트로트에 젊은 피
수혈을! 젊은 피에 의한 일본 엔카 시장 공략을!
( 이규형 /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