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살 경우 아무 일이 안 일어 나기도 하지만, 별 이상한
일이 다 생길 수도 있다. 영화 '정글 쥬스'(감독 조민호·3월22일
개봉)는 아무 생각도 대책도 없이 살아가는 청량리 윤락가 양아치
기태(장혁)와 철수(이범수)를 등장 시켜 잡다한 해프닝들을 연결시킨다.
이럴 경우 주인공들은 대단히 낙천적이다. 과거의 경험도, 미래에 대한
예측도 그들의 머릿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기 때문에, 몸만 약간 아플
뿐이다. 조민호 감독이 만들어낸 기태·철수가 얼마나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지 한번 보자.
속칭 '청량리 588'에서 놀고 지내던 기태와 철수는 조폭 중간보스
민철(손창민)에게 끌려가 조수 생활을 한다. 마약을 팔러 중간 상인들을
만난 민철은 의욕 과잉으로 싸움을 하다 총을 맞는다. 보스는 둘을 불러
민철이 빼앗긴 2000만원을 대신 갚으라고 지시한다. 현금 인출기를 털어
보려고도 하고, 중년 여인에게 몸을 팔거나 괜히 싸움을 걸어 얻어 맞는
식으로 돈을 메꿔보려고 하지만 생각이 없으니 성공도 못한다. 그나마
경찰에 붙잡혀 조폭 소탕의 '프락치' 역할을 맡은 이들은 우연히
보스의 마약을 얻게 되고, 그걸 팔겠다고 부산으로 튄다. 저돌적인
윤락녀 맥라영(맥 라이언?·전혜진)이 동행한다. 그리고
어찌어찌하다보니 두 '양아치'는 월드컵을 보겠다고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넌 야심찬 젊은이들이 돼있다.
아무 생각없는 기태·철수의 행로를 2시간 동안 쳐다보는 데, 극한으로
치닫는 폭력의 잔인함과 노골적인 섹스가 번번이 걸린다. 붙들어 놓고
코를 향해 골프채를 휘두른다든가, "손목 자르라"는 지시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려고 손목에 식칼을 대는 식이다. 이런 장면들은 쾌(快)보다
확실히 불쾌(不快) 쪽에 속하고, 잠시 '아무 생각 없음'에 몰두하는데
지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