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아내 셀레나(프란체스카 네리)와 테러의 희생자 브루어(아널드 슈워제네거 ·오른쪽).


올해 55세의 아놀드 슈워제네거. 근육질이야 여전하지만, 50대 중반의
그에게 '터미네이터'의 액션을 구사하도록 요구했다간 그 영화, 여러
방면에서 욕 먹기 딱 좋다. 그러나 새 영화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2월 8일 개봉)'는 여전히 그의 액션
이미지에 많은 부분 의지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심하게 얻어맞고 철창이나 창고에 비참한 모습으로 갇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50대 중반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근육질을
활용해야 하느냐에 관한 동기의 문제가 남는다. 과거에 살고 있는 미래
세계의 지도자를 구하기 위해(터미네이터), 또는 악마로부터 지구를
구해내기 위해(엔드 오브 데이즈) 주먹을 쓸 경우, 관객들은 동정할 수
없다. 그래서 제작진은 그의 어린 아들과 아내를 '무고하게
희생'(Collateral Damage)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미국 LA 소방관인 고디 브루어(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내·아들이 폭탄 테러로 즉사하는 일을 겪는다. 콜롬비아 영사와 미국
CIA 간부를 노린 테러. 테러의 주체는 콜롬비아의 반란군 지도자
클로디오(일명 울프·클리프 커티스)인 것으로 일찌감치 밝혀지지만,
미국 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적극적인 수사를 않는다. 폭발물 전문가인
브루어는 직접 클로디오를 죽이겠다며 콜롬비아로 향한다.

'터미네이터 1,2'를 찍은 촬영감독 아담 그린버그의 카메라는 멕시코
걸프 해안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볼거리'로
화면을 채우고, '도망자'를 연출했던 앤드류 데이비스 감독은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제공한다. 치밀하게 연출된 건물들의 폭파 장면,
브루어가 수십미터 높이의 폭포에서 뛰어내리고 험준한 정글을 누비는
모습은 '타이타닉' '도망자' 스태프의 특수 효과와 맞물리며
슬픔·좌절·분노의 감정을 투박하게 전달해낸다.

브루어가 천신만고 끝에 반란군의 은신처를 찾아내고, 클로디오의 숙소에
사제 수류탄을 던지면서 끝맺는 듯 하지만, 브루어의 처자식을
연상시키는 미국 여인 셀레나(클로디오의 아내·끌로프란체스카 네리)와
남자 아이 하나가 나타나면서 새롭게 뒤틀린다. 반군의 은신처에 대한
CIA의 융단 폭격을 뒤로 하고, 또다른 테러 대상지에서 합류하는 세
사람. 관객들은 브루어가, 죽은 처자식을 연상하며 셀레나, 그리고 그의
양아들을 보살펴 주길 원하게 돼지만, 감독은 그같은 예상을 가만두지
않는다.

작년 9·11 테러 때문에 개봉이 연기됐던 이 영화는 초인적 강력함이
사라진 '틈'을, 박진감 넘치는 화면과 추리 소설식의 스토리로 메우려
한다. '콜래트럴 데미지', 즉 무고한 희생을 낳는 테러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지만, 그같은 메시지를 관객 가슴에 심어주기엔
이 영화에선 테러의 스펙터클이 더 강력한 '관객 서비스 장치'로
설치되었다는 모순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