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칭화대 도서관에서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학기중 수시로 치러지는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학생들은 시험기간이 아니라도 도서관에 몰려든다.

## 옥스퍼드, 시험중 포기-졸도…매년 800명 정신상담 ##
## 싱가포르, 수강생 전부 D학점 받기도 ##

지난해 12월 15일 밤 12시 스탠퍼드대 기숙사 미리엘즈동 앞 광장.
학생 수백명이 몰려 나와 학교가 떠나갈 듯 일제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5분여 괴성을 지르던 학생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의
어깨를 치고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속칭 '원초적 비명(primal scream)'
행사. 학기말 시험 1주 전, 학생들이 시험준비에 시달린다고 해서
'죽음의 주(dead week)'라고 부르는 기간에 스트레스 해소를 하느라
벌이는 학생들의 풍습이다.

작년 11월 말 오전 7시 중국 칭화대 물리학과 쑨저 교수
수업에 50여석의 자리가 꽉 차있다. 수업이 시작되자 쑨저 교수는
기초물리학 관련 쪽지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한 학기에 5차례 이상
수업 중에 쪽지시험을 보죠. 불시에 보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에 빠질
수가 없어요." 그는 쪽지시험마다 총점의 3~5%를 차지하기 때문에
성적관리를 잘 하려면 평소에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대학원생
류환(27)씨는 "쪽지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아예 기말고사를
치를 수 없다"고 말했다.

칭화대는 4년간 F학점 4개 이상을 받으면 졸업을 못하고 대신 수료증을
받기 때문에 성적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F학점은 해당과목 재수강을
해도 '원죄'처럼 성적표에 남고, 이는 지워지지 않은 채 취직원서에
따라다닌다. 덕분에 매년 1~2명씩 성적을 비관한 자살사건이 일어난다는
게 학생처 관계자의 말이다.

선진대학의 학점따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얼렁뚱땅 가르쳐 학점
주고 졸업시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학교에서 학사관리를 철저히 하는
만큼 학습 요구량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학교 졸업생으로 행세할 수
없게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옥스퍼드대 2학년 헤더(20)씨는 작년에 3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했다.
재작년 1학년 때 3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학년말 시험 도중 쓰러져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 전날까지 밤새워 공부하다 정작 당일 시험장에서
졸도한 것이다. 미리암 정 연구교수는 "매년 학기말 시험 때 시험을
포기하거나 실신하는 학생들이 3~4명씩 나올 정도로 학생들이 느끼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심하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에서는 중간·기말고사 외에도 '퀴즈시험'을 수업 중 갑자기
치르고, 중간고사를 여러 번에 걸쳐 나눠보는 교수도 허다하다.
중간·기말고사 성적은 전체 성적의 50% 정도만 반영하고 나머지는 평소
숙제와 퀴즈, 에세이 등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학기 내내 긴장하며 지내지
않을 수 없다.

이 학교 정치학과의 한 한국 유학생은 1월 초 리포트를 제출하면서
노트북을 통째로 냈다. 컴퓨터가 다운되는 바람에 잔뜩 써놓은 정치철학
관련 에세이가 날아가버릴 것을 우려한 이 학생은 어댑터까지 한꺼번에
교수에게 냈고, 이런 정성이 감안돼 A학점을 받았다. 이 학생은
"학생들이 모두 웃었지만, 한 학기에 두 번 내는 에세이의 성적반영
비율이 50%나 되기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참았다"고 말했다.
성적 관련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스탠퍼드대 학생들은 지난 71년
상담소 '브리지(Bridge)'의 문을 열었다. 이곳은 학생들이 상담원이 돼
다른 학생을 24시간 상담한다. 옥스퍼드대도 이런 상담소에 학생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 학교 상담원 엘사 벨씨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등을 상담하러 연간 24주 수업기간 중 800명의 학생이 방문하기 때문에
예약이 늘 밀려 있다"고 말했다.

상대평가로 학점을 주는 싱가포르대에서는 원칙과 달리 수강생 전부가
D학점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신장섭(경제) 교수는 "같은 대학·학과
출신이라도 학점에 따라 입사 후 초봉이 달라지는 싱가포르에선 학교
시험 자체가 입사시험인 셈이어서 성적 처리를 엄격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서울대의 모습을 비추면…. 서울대는 요즘 학사경고제도를
없애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학사경고제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쫓아내는 수단이라는 학생들 주장에 밀려 88년
폐지됐다가 99년에야 겨우 부활됐다. 99학년도 입학생부터 적용하기로 한
이 제도는 4번 이상 평점 2.0 이하를 받으면 자동제적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교측은 학생들의 계속된 요구에 따라 작년에
학사경고 기준을 1.7점으로 낮추었다.

작년 5월 서울대 '기초사회학' 중간고사 기간에 사회학과 신입생
20여명이 집단으로 부정행위를 해 재시험을 치르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들은 시험장에 '족보'로 불리는 모범답안을 숨기고 들어가 베껴
썼다가, 같이 시험을 본 다른 과 학생의 이메일 제보로 담당교수에게
들통났다. 서울대는 그러나 관련 학생들을 엄중 경고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세계는 변하는데 서울대는 여전히 성적불량 학생 봐주기 학사운영을 해
스스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