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위),호사카 유우지

## "교과서 왜곡…신사참배…일본 아직 종전 안해" ##

광복절 56주년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전격적인 신사참배로
아시아인들을 격분시키는 가운데 다가왔다. 한·일 두나라는 역사왜곡
교과서 바로잡기, 한·일 공동개최 월드컵의 성공적 진행, 문화교류
증대 및 동북아 경제·문화블럭 형성이라는 중장기 다국적 과제를 앞에
놓고 있는 가운데 당혹스러운 '8·15'를 맞는다. 해방동이 소설가
최인호(56), 그리고 일제 민족동화정책을 분석,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일인 중견 정치학자 호사카 유우지(46) 교수(세종대)가 14일 그
문제들의 근본 기저를 살피는 긴급 대담을 가졌다. (편집자)


▲최인호=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을 좋아한다. 우리가 식민의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일본이 옆에 있어서 문화적 교훈을 많이 받는다. 일본인의
예의와 공중도덕, 질서의식도 본받는다. 신문이 일본은 왜 이런가라고
비판하는 날도 가령 TV에서는 일본의 높은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가
방영되곤 한다. 그러나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서 보듯 왜 일본이 역사적 퇴행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은 내정간섭이라면서 자존심 상해하지만, 역으로
생각해야 한다. 끊임없이 반성을 요구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경제적 쇠퇴와 불안감을 그런 식으로 해소한다면 그것은
정치가들의 교묘한 전략일 뿐이다.

▲호사카=어제(13일) 일은 ‘기습 참배’였다.

▲최인호=마치 진주만 기습하듯….

▲호사카=고이즈미 참배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고이즈미가
구미 열강을 중시하고 아시아를 경시하는 외교 스타일이다. 구체적 대안
없는 대중 포섭 정책이다. 위험한 시점에 오지 않았나 우려된다. 어제
개인참배인지 공식참배인지 아주 애매하게 처리하는 것도 일본식
해법이다. 곤란할 때 애매하게 하는 것은 천황이 과거사에 취하는 태도와
같다. 고이즈미는 아버지쪽 친척 중의 한 분이 특공대였고,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고 들었다. 그는 불황 12년을 돌파하겠다면서
구체적인 정책없이 대중 민심을 잡으려는 정책을 쓰고 있다.

▲최인호=나는 궁금하다. 일본인들은 말로 유감이라지만, 2차대전에 대해
미안하다 생각하지 않고, 전쟁을 죄악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마음깊이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을 갖고 있다.

▲호사카=독일과 일본의 차이다. 독일은 나치를 장본인 삼아 죄를
정리했다. 종전 전까지 일본의 천황제는 침략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었다.
전후에는 천황제의 상징성이 그대로 남았다. 이것이 일본을 파괴시킨다.
일본이 과거 반성을 하면 천황제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애매하게
해왔다. 역사인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일본 역사
교육은 일본이 어떤 목적으로 전쟁을 치렀는지 근본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끔직한 전쟁' 정도로 가르쳤지만, 사실 그 목적은 '아시아를
황화한다'였다.

▲최인호=지난 1988년 '잃어버린 왕국'을 연재하면서 한 일본 기자를
만났는데, 그가 '일본은 천황제가 있는 한 민주주의 장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문제는 2가지 점에서 애매하다. 천황제가 정치적
모순이라면서 일본 정치 자체를 송두리째 끌어안고 있다. 또 하나는
교과서 문제를 논하면서 근대사만 얘기하고 있다. 일본 고대사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우리나라는 신의
나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일본은 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미열강 같은, 마치
신국같은, 탈아시아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호사카=일본 문화는 고대로부터 중국 한국에서 영향 받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3세기부터 이에 대한 반발이 생겼다. 문화에 고유성이
없다는 열등감을 해소하려다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천황제를 찾아낸
것이다. 일본 민족주의인 국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8,
19세기 일본인이 가장 우수했고, 중국 한국에 비해 우수하다, 그리고
일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중국 한국을 멸시하는
일본식 우월주의가 만들어졌다. 역사왜곡 교과서도 결국, 일본 우월주의,
한국 중국 멸시 등을 근저에 깔았다는 배후 사상이 문제인 것이다.

▲최인호=우리는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해 무심했다. 관심이 없었다.
일본은 항상 우리를 무시했다. '무시'는 관심은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는 임진왜란 직전까지 "감히 일본이 우리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일본에 대해 본질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일본은 한국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에 좋은 것이 일본에 좋고
중국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다. 그런 이해가 있어야 정치적 역사적으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생신을 만드니
애매모호함이 따르고 악순환이 계속되는게 아닌가.

▲호사카=말씀하신대로다. 천황제 자체보다, 천황제를 만든 배후
이데올로기가 문제다. 에도(강호·1603~1867) 시대는 천황제가 있었지만
실권이 전혀 없었다. 당시 조선에서 유교 사상을 배워 평화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2차대전후 지금까지는 에도 시대를 닮았다. 지금 극우
세력의 움직임은 그것을 깨려는 것이다. 명치시대의 부활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그길로 간다고 할 수는 없다. 침략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평화 이데올로기로 바꾸는가가 문제다.

▲최인호= 이제 한·중·일 3국에는 공동운명체적 문화의식이 싹트고 있다.
90년대 이후 홍콩영화는 홍콩만의 영화가 아니다. 이번에 내 소설
'몽유도원도'를 첸 카이거 감독이 영화로 만드는데 음악을 사카모토
류이지가 맡았다. 다국적이다. 또 중국에서는 '한류'붐이 대단하다.
서울 압구정동에서는 일본 패션이 그대로 유행하고, 또 일본에서는 한국
요리가 선풍적인 인기다. 세 나라 사이에는 '문화적 블럭화'가
이뤄지고 있다. 예전에 흠잡듯이 말하는 '침투'가 아니다. 그런데
정치,경제적인 인도 없이 문화로만 교류하면 언젠가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고이즈미 총리에게 화가 난다.

▲호사카=공감한다. 문화적 차원에서의 교류는 양국 국민의 마음속에
역사적 공동인식이 없다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일
양국의 학계와 시민단체가 손잡고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양국의 역사 시간에 부교재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일본 젊은이들도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면 납득한다. 그만큼 순수하다.
몰라서 휘둘린다.

▲최인호=소설가 이시하라 신타로에게 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게만 'NO'라고 말하는 일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웃인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 'YES'라고 말할 수 있는, 그래서 진정한 이웃이 돼야
한다고 했다.

▲호사카= 새 역사교과서나 신사참배 문제에 관해 일본 내 반대파가 많다.
물론 상당수는 아예 무관심하다. 고이즈미 총리 찬성파는 소수다. 그런데
한국의 보도만 보면 일본인 대부분이 고이즈미처럼 생각하고 있는 걸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그건 별로 좋지 않다.

▲최인호= 내가 45년생이니까 해방동이다. 아마 그런 이유때문에 내가 여기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2차대전의 패전국은 일본이다. 우리가 아니다.
그런데 일본은 쪼개지지 않았고 우리가 대신 남북으로 갈렸다. 6.25
전쟁은 거창한 명분 이면에는 형제가 형제를 죽여야 했던 '더티
워'(dirty war)였다. 그런 의미에서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호사카= 흥미로운 말씀이다. 2차대전후 일본과 달리 독일은 분단됐다.
일본 대신 한국이 분단됐었다는 사실을 일본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한국의 분단 원인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없다. 한민족 고통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시집이 잘 팔린다. 시인은 타인의
고통을 언어로 쓰는 사람이라고 할 때, 아마도 일본에서는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같다(웃음). 일본 내에서는 정치, 안보
책이 주로 팔린다.

▲최인호= "왜 자꾸 과거에 집착하느냐"고 물으면, 이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고 말하겠다. 해마다 '광복절'은 오지만, 실제적인
진정한 '해방'도 '광복'도 아직 오지 않았다. 일본은 아직
'종전'을 못했다. 이게 비극이다.

▲호소카= 일본에서는 한반도 분단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북이 붕괴되면 그 난민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는 그 근본 원인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양국의 시민
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한국 시민단체는 일본
시민단체보다 힘이 세다. 둘이 단결하면 일본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월드컵도 기분 좋게 치러야 한다. 단지 양국의 경기장 수준을
비교한다든지, 한일 경기가 월드컵 승패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는
양상은 별로 좋지 않다.

▲최인호=결국 역사와 현재에 대한 한-일 공동인식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약력'

■최인호

-1945년 서울생
-연세대 영문과 졸
-'타인의 방'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일제의 광개토대왕비 조작과 고대 한국인들의 일본 열도 개척사를
다룬 대하소설 '잃어버린 왕국'(1995)
-대하 장편 '상도'(2001), 중단편집 '달콤한 인생'(2001)

■호사카 유우지(保坂祐二)

-1956년 동경생
-동경대 공학부 졸
-고려대 정외과 석·박사 졸업
-일본의 아시아 침략, 한·일관계 전공.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분석' 등 논문 다수.
-세종대 일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