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의 야전사령관 이상국 단장(현 KBO 사무총장)은 아직도 야구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통한다. 육상 단거리 선수 출신인 이단장은 본래 해태제과 시절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판매왕' 출신. 해태제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이단장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82년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과 함께 적을 옮겼다.
프런트의 역할은 있는 듯 없는 듯 표나지 않게 선수단을 챙기고 뒷바라지 하는 것. 하지만 이단장은 그늘에 머물지 않고 누구보다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95년 포수 장채근(현 해태 코치)을 보내고 최해식(현 해태)과 2차지명 1순위 이원식(현 해태)을 맞트레이드한 것도 이 단장의 작품. 사람들의 허를 찌른 이 트레이드는 두고두고 야구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단장은 연봉협상 테이블에서는 빈틈없는 논리로 협상을 주도해 선수들에게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를 두고 "공(功)도 많지만 과(過)도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열악한 구단 재정과 최고 선수들의 연봉을 무리없이 조합해서 팀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단장은 96년 1월 선동열의 일본 진출을 둘러싼 잡음 때문에 14년만에 해태를 떠난다. 주니치와의 가계약 상태에서 갑자기 뛰어든 요미우리가 호조건을 제시하자 협의문을 작성, 이중계약 파문이 일었기 때문.
이단장은 또한 김경훈 스카우트(해태 스카우트팀 팀장)와 콤비를 이뤄 선수 영입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김경훈 스카우트는 신일고 시절 청소년대표를 지낸 야구인. 82년 창단때 포수로 해태 유니폼을 잠시 입었지만 그라운드에서보다 선수를 발굴하는 탁월한 능력이 높이 평가받는다. 이대진 박진철 장성호 김종국 등 요즘 해태의 주축멤버들 대부분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김경훈 스카우트는 "구단사정이 최악이었던 지난해와 올해에 입단한 홍세완 장일현 김민철 등에게 계약금을 넉넉하게 챙겨주지 못했다"며 아직도 미안해 한다.
97년 모기업 해태제과의 부도 이후 프런트에도 칼바람이 몰아쳤다. 절반에 가까운 직원들이 정든 직장을 등져야 했고, 가계도 부도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호랑이는 배를 주려도 풀을 먹지 않듯' 명가의 자존심만은 끝까지 지켜온 이들이 어쩌면 명문 해태 타이거즈의 진정한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끝〉
〈 스포츠조선 민창기 기자 huelv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