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의사와 오랜 대화를 원하는 것처럼 의사도 환자와의 친밀한
대화를 원한다. 진단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질병의 치료 과정 내내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수확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자와 의사의 대화는 흔히 겉돈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환자가 궁금해하는 것과 의사가 말하고 싶은 것이 다르고, 의사가
궁금해하는 것과 환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환자들은 의사에게 꼭 할 말을 준비하고서 의사를 만나지만, 의사들은 그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엉뚱하고 도무지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들을 흔한다.
「밥은 잘 먹는 지」, 「변은 잘 보는 지」, 「가족관계는 어떤 지」,
「직업은 무엇인 지」, 「성생활은 원만한지」, 「외도를 하지는 않는
지」, 「집안에 속썩이는 사람은 없는 지」, 「돈은 잘 버는 지」 등등.
의사들이 이렇게 하찮은 질문을 반복하는 이유는 환자의 일상 생활에서
병의 원인이 발견되기도 하고, 악화 또는 재발되는 요인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또 인체의 각 부위는 놀라울 정도로 서로 연관성이 있어 어느
한쪽에 증상이 있으면 예상치 못한 곳에도 다른 증상이 생기도 한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물론, 치료 경과나 부작용 출현 여부를
알기 위해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가 필요하다.
( 박재영·의사·「청년의사」편집주간 )